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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블랙리스트철폐투쟁
요약설명 : 보고서> (등록번호 : 447097), 태창메리야스부당해고자 일동 명의의 <태창 섬유부당 해고자의 호소> (등록번호 : 68424)와 호소문 <우리에게는 일터가 필요하다> (등록번호 : 483865), 전주교구사제단의 보고서 <태창섬유노동조합 탄압사건의 경위> (등록번호 : 483956), 태평특수섬유해고자일동 명의의 호소문 <태평특수섬유의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즉각 시정할 것를 촉구하는 호소문> (등록번호 : 361337), 태평특수섬유 해고자 김용자 , 삼익가구 해고자 서기화의 <해고노동자 인권선언> (등록번호 : 28941)가 있으며, 음성사료로 강헌구가 생산한 <블랙리스트 철폐② 1984.6.20 녹음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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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문제대책위원회사건
요약설명 : 2건, 장만철 1건 등 각각의 직접적 관련사료들이 검색되었다. 병역문제대책위원회가 생산한 <병역문제대책위 선언문 제1호> (등록번호 : 85380), 병역문제대책위원회의 결의문 <병역의 의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김영종, 한동철, 손임범의 현역입영 처분을 취소하라> (등록번호 : 394179), 이범영 외 28인의 <성명서> (등록번호 : 1882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의 <인권소식 제4호> (등록번호 : 576410), 한국인권운동협의회의 성명서 <민주청년인권협의회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만행에 대한 성명> (등록번호 : 578090)와 성명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의 석방 촉구> (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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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개헌반대투쟁
요약설명 : : 68269), 국민투표 시 사용 된 <삼선개헌 찬반 투표용지>(등록번호 : 456819), <삼선개헌반대 시도지부 조직위원 명부>(등록번호 : 456814) 등이 있다. 특히 당시 공화당 사무총장이었던 오치성의 <삼선개헌불가피론>(등록번호 : 97940)과 신민당 의원 고흥문의 <삼선개헌은 저지해야 한다.>(등록번호 : 97941)는 문서 사료가 있어 삼선개헌을 둘러싼 양측의 대비되는 입장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삼선개헌에 반대하는 재미한인의 성명>(등록번호 : 469215), <삼선개헌반대재미한국인투쟁위원회의 취지문ㆍ성명서 및 삼선개헌반대 서명운동 양식>(등록번호 : 469229) 등 삼선개헌반대재미투쟁위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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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
면담자 : 이창영
일자/장소: 2021.11.5. / 서울시 서대문구 회의실
요약설명 : 입학, 3선개헌반대시위 참여, 군 생활, 함석헌 선생과의 인연, 간디사상연구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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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배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21.10.3. / 서울시 종로구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6·8부정선거반대투쟁, 3선개헌 반대 투쟁, 명성여고와 중경고 교사생활, 서울문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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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21.9.5.(1차), 9.6.(2차) / 서울시 종로구 회의실
요약설명 : 3선개헌 반대 투쟁, 군대 강제 징집과 카투사 복무, 10월 유신 선포와 10·2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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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와해 징조 절정, 혁신파와 강경파의 갈등 노골화
일자 : 1960.4.24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혁신운동을 백지화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혁신파 의원들을 비난하였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일부 혁신파 의원들이 퇴장해 버렸고, 그 상태에서 이재학과 임철호 의원을 포함한 20명의 임시수습대책위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3시간이 채 못 되어 혁신파계 대책위원 7명이 “3·15선거 이후 미력이나마 민심의 수습과 당내 정화를 위해 혁신운동을 해오던 우리들은 24일의 본 당 의원부 총회 결의에 의하여 원내수습위원에 선출된바 있으나 이를 사퇴하는 바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수습위원회 자체가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수습위에서 사퇴한 혁신파 의원들은 자신들은 처음부터 자유당 내의 부패세력을 정화, 숙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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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회 목사들, 성토대회 개최 및 성명서 발표
일자 : 1965.7.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목사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6월 21일 민간사절단의 기독교 대표로 최두선, 김활란, 정일권 등과 미국에 가서 박정희 군사세력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한일굴욕외교반대 투쟁을 결의한다. 당시 한국 교회의 입장은 한일국교정상화는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소액의 차관을 조건으로 일본의 만행을 다 눈감아야 한다는 것은 굴욕적인 것이며, 특히 일제에 의해 신앙적 고난을 겪고 순교자를 낸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일 박정희의 삼선개헌 시도에 대해 1969년 9월 4일 한경직 목사는 조용기, 김장환, 김윤찬 등 242명의 한국개신교 지도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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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개헌저지 당내·당외 이원조직 구성하기로
일자 : 1969.1.18
분류 : 분류없음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및 지식인들을 규합키로 했다. 3선개헌저지범국민협의회 성격의 이 초당기구는 오는 월말 이내 발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신민당 간부들은 “이미 이들 당외인사와의 접촉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신민당은 개헌안의 발의자체 저지를 일차적인 투쟁목표로 삼고 오는 3월부터는 당외인사도 포함된 연사진으로 전국유세에 나설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한 책임 있는 집권당 소식통은 당의 고위수뇌들이 이미 헌법개정의 일정을 짜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 스케줄에 의하면 집권당은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헌법개정에 찬성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후 5월 중에 개헌안을 제출하기로 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