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이소선'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3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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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2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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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선 어머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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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0300
날짜 : 1987.11.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이소선 여사가 노동자들을 독려하는 편지글. 전태일의 뜻을 이어받아 민주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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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선이 오빠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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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8035
날짜 : 1975.07.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노동자의 어머니로서 평생을 온전히 실천하신 이소선 여사가 시골에 있는 오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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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ef der Frau Lee, So-Son(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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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93807
날짜 : 1978.12.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종수
요약설명 : 전태일 모친 이소선 여사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와 노동 인권에 관련한 견해를 적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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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8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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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기념관에 개설한 안양노동상담소 개소식의 이소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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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0464
날짜 : 1985.06.22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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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전태일 동지 묘지 앞에서 묵념을 드리는 이소선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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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0862
날짜 : 1985.11.17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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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진의 장례식을 몰래 지켜보던 양주경찰서 형사에게 노동자들이 달려들자 말리는 이소선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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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0981
날짜 : 1986.04.27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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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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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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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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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조건으로 총 10건, ‘이소선’ 조건으로 총 126건 중 사건 전후 사료 총 25건, ‘장기표’ 조건으로 총170여 건 중 관련사료 7건, ‘민종덕’ 조건으로 총 22건 중 관련사료 2건, ‘평화시장’ 조건으로 총 94건 중 관련사료 38건, ‘한국노동인권헌장’ 조건으로 총 1건이 검색되었다. 평화시장사건대핵위원회 명의의 <어머니와 노동교실을 찾자> (등록번호 : 443635), 평화시장근로자인권문제협의회 명의의 성명서 <성명서 [노동운동 탄압, 노동교실 탄압 반대, 이소선 여사 비롯한 구속자 석방 등]> (등록번호 : 91838), 평화시장노동자일동 명의의 <(청계피복노조의) 9.9 결사선언>(등록번호 : 48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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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진 분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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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등록번호 : 095213) 박영진의 성장과정, 의식화과정, 투쟁과정이 일지형식으로 쓰여진 자료, <경찰의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출입구를 몸으로 막는 사람들> (등록번호 : 700928) 박용수 사진, <노동투사 박영진 동지 장례투쟁 보고서> (등록번호 : 095104), <박영진 열사 장례식 팜플렛> (등록번호 : 326761) 박영진의 약력과 투쟁경력, 분신 이후 노동자와 민주인사의 투쟁 경과, 편지 내용 등 소개, <박영진의 장례식을 몰래 지켜보던 양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노동자들이 달려들자 이를 말리는 문익환 목사와 이소선 여사> (등록번호 : 700981) 등은 시신을 둘러싼 긴박하고 암울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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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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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관련 사료이며 전태일기념사업회 정간물 『사람세상』, 기념식 관련 자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태일의 일기 중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쓴 글 <대통령각하> (등록번호 : 445053), 전태일 사후 장례식 조건 타결 후 운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오열하는 사람들과 운구하는 사람들> (등록번호 : 733459), 1981년 청계피복노조 해산과정에서(추정) 계엄포고령 및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소선 지원 및 전태일 추모사업을 위한 모금을 알리는 자료로 전태일의 일기와 남긴 글을 편집 하여 작성된 <나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등록번호 : 063944), <전태일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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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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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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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9월 3일,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소선은 끝내 눈을 감았다. 가톨릭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유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자의 편에 섰던 소선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더 나아가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다. 소선의 장례는 시민장으로 치러졌으며 모란공원, 꿈에도 그리던 아들 전태일의 뒤편에 묻혔다. 약 9년의 세월이 지난 2020년 6월 10일에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소선은 국민훈장 모란장에 추서되었다. 정지아(소설가)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1990년 실천문학에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창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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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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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이소선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항거하거나 감옥에 끌려갈 때마다 마치 자신이 죄를 지어 생긴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 숱한 학생과 노동자들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죽음으로 항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괴로움에 시달렸다. 1986년 3월 17일 신흥정밀에 다니던 노동자 박영진이 분신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마치 꿈과도 같이 이소선을 만날 수 있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형사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영진이 어딨냐?” “지금 못들어 갑니다.” “박영진 어머니 됩니까?” “그래, 내 아들이다. 썩 비키지 못해” “나, 태일이 엄마다.” 박영진은 떠지지 않는 눈을 꿈틀거렸다. “저, 정말이야? 전태일 엄마 맞아?”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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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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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출옥한 그에게 장기표가 두툼한 노트를 건네주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서 받은 전태일이 남긴 일기였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전태일이 1970년 8월 9일에 쓴 일기는 자신의 죽음이 암시되어 있었다. 또한 동료 노동자와 끝끝내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새겨져 있었다.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 작업을 시작하던 1974년 4월,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민청학련사건의 수배자가 되었다. 장기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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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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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선,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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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차성환, 이영재
일자/장소: 2010.07.17./ 유가협 사무실
요약설명 : 유가협 결성 이전 유가족 운동, 유가협의 결성 과정, 유가협 초기 활동, 유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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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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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13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이소선 여사와 장기표는 삼일다방에서 처음 만나 서로 강한 감화를 받아 그 인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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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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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6 / 국민대학교 북악관
요약설명 : 모친 이소선 여사가 이광택을 보고 목사인 줄 알고 추도사를 청하자 문득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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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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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선, 아들 전태일의 장례식을 미루고 처우개선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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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14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분신자살한 전 평화시장 재봉사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는 14일 평화시장의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요구조건이 이루어질 때까지 장례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한국일보』 1970.11.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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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시체안치실에서 사흘째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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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16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13일 서울평화시장일대의 피복제조 종업원들의 처우 개선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 씨의 어머니 이소선 씨(42)는 아들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아들의 시체 인도를 거부하겠다면서 연 사흘째 성모병원 시체안치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 씨는 전 씨가 숨을 거두며 남긴 “내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시체인도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물질적 요구는 아니라고 말했다.『동아일보』 1970.11.16. 7면; 『경향신문』 1970.11.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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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교인의 적극 사회참여 등을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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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25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25일 오전 11시 감리교신학대학(서대문구 천연동) 학생 2백여 명은 전태일 씨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평화시장 노동조건개선 추진위원장 최종인 씨를 교내 학생회의실에 데려와 전 씨의 생애와 생활상을 들었다. 학생들은 또한 전 씨의 죽음에 대한 교인들의 냉담에 대해 교인으로서 울분을 금치 못한다고 주장, 교단은 노사문제 조사에 솔선수범할 것과 교인도 적극 사회참여를 하자는 등 3개 항목을 결의한 후 이날 오후 2시 24시간 기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동아일보』 1970.11.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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