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인혁당(인민혁명당'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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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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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혁명당 관련 통일열사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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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40197
날짜 : 198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병길
요약설명 : 김용원, 여정남, 진재권, 장석구, 유진곤 인민혁명당 사건과 청학의 임무 인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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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총리에 대한 반박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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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3426
날짜 : 1975.04.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구성해서 대학생들의 유신 반대 시위를 배후 조종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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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노트 신부의 자기 소명재료-A house of C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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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3427
날짜 : 1975.04.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인혁당 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돕다 추방당한 시노트 신부 사건 관련. 인민혁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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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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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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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문, 도예종의 항소이유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 6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은 신문스크랩 <인혁당사건관련 자료모음>(등록번호 : 492089)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1차 인혁당 사건 판결문>(등록번호 : 534960)을 통해 박정권의 인혁당 사건 조작 시도가 여실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모습>(등록번호 : 709842)에서는 1차 인혁당 관련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1차 인혁당 사건의 시발이 되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145건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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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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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재건위사건-재심청구/상고·항소이유서 자료집>(등록번호 : 437195)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재심청구 노력을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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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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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을 바로 알자 -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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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2007년 발간된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인혁당재건위사건 피고인 측 변호인 김종길 씨, 조승각 씨가 공판기록의 조작 가능성을 확인했다. 조승각 변호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했으나 시인한 것으로 기록된 부분을 표시하여 가족에게 전달했다. 더불어 위원회는 공판조서 변조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통해 반국가단체 결성 증거가 피고인의 자백 외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판조서가 사형 확정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실제 진술 내용과 다르게 조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7년 인혁당재건위사건 재심 재판부는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 집행당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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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혁당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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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인혁당사건(인민혁명당재건위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가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 세력으로 인혁당을 지목하고, 관련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여 북한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으로 조작하여 8명을 사형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에게 무기징역 등 장기 형량을 선고한 사건이다. 가족들의 면회는 물론 변호사들의 접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형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도 못할 정도의 고문이 행해졌으며, 가족들 역시 수사기관에 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가족들은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아이들은 동네에서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해코지를 당해야 했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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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청학련사건 - “사형선고를 받아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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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니 그들은 책상에 앉혀 놓고 종이를 들이밀었다. “너 인민혁명당에 가입해 민청학련을 지도했지?” “아닙니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헉!”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정보부 요원들은 의자를 넘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진 그에게 발길질과 몽둥이질을 해댔다. 그는 또 다시 도살장의 짐승처럼 거꾸로 매달렸고 결국 자신이 인혁당의 핵심이라고 거짓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정부는 민청학련사건으로 연행한 1,024명에게 무지막지한 고문을 가해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북한 간첩 누구를 만났는가, 북한에는 언제 다녀왔는가가 필수 질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대구 출신들은 인민혁명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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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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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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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1964.8.14 석1면. 박태순·김동춘, 『1960년대의 사회운동』, 까치, 1991, 212~213쪽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1964년 3월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이 본격화되자 학생과 시민의 반대가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1964년 3월 24일 서울대학교 시위를 시작으로 고등학생까지 참여한 학생시위는 전국 주요도시로 계속 번져나갔다. 6월 3일에는 1만 200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광화문까지 진출하며 정권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날 밤 9시 50분 서울시 전역에 8시부터 소급 실시되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6월 4일 자정부터 육군 4개 사단이 진주하였고 대량 검거가 시작되었다. 7월 29일 계엄이 해제되기까지 55일 동안 구속된 인원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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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벗기고 물·전기고문으로 살점 튀어 나오기도” 인혁당 관련자들, 변호인에 고문 사실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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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9.1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12일, 세칭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로 구속 중인 미결수 25명 중 거의 대부분이 수사기관의 예심과정에서 전기, 물, 몽둥이 등으로 심한 고문을 당해 피까지 토한 피의자가 있었다고, 담당 변호인인 박한상 변호사가 밝혔다.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 서울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들이 기소할 수 없다고 서명을 거부하고 담당검사 중 3명이 사표까지 낸 와중에, 무료변론을 맡고 나선 한국인권옹호협회 회장인 박한상 변호사가 11일 하오부터 서울교도소에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착수, 12일 상오 현재 15명을 조사하고 그중 13명이 고문당했다고 이날 밝힌 사실은 다음과 같다. ▶ 도예종(40) 7월 30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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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인 모종 작용” 국회 내무위 국감반, 인혁당사건 관련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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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9.2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국회·사법부
요약설명 : 중앙정보부를 감사 중인 국회 내무위는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을 비롯하여 간첩 황태성 사건 및 인민혁명당 사건을 중점적으로 추궁했다. 김형욱중앙정보부장은 인혁당사건과 관련하여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고문 사실이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한편 서민호, 방일홍 등 야당의원들은 인민혁명당 사건 배후에 정치적 모종 작용이 있는 듯한 심증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방 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 여당의 간부 비서 몇 사람을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듯하다고 말했으며, 서 의원은 “이 사건에 중앙정보부가 처음부터 관여한 것이 아니고 타 수사기관의 하위기관이 입건수사에 착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964.9.22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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