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함석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6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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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37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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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함석헌 선생 오산학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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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31708
날짜 : 1989.02.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함석헌선생 고별예배순서와 약력, 조가, 오산교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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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咸錫憲詩集- 水平線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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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54489
날짜 : 1980.08.15
구분 : 문서류 > 단행본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함석헌이 작성한 시들을 묶어 수평선 너머라는 제목으로 발행한 시집. (맘), (水平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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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이 지인 Nicola에게 보낸 장준하 의문사, 기대중 연금, 목요모임, 학생시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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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12286
날짜 : 1975.09.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함석헌의 박정희 유신독재 하의 민주화 인사와 공안기관에 의한 조직적 탄압과 폭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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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7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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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을 봉쇄하자 경찰벽을 바라보는 함석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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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57031
날짜 : 1987.03.03
구분 : 사진필름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함석헌 선생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이 경찰의 저지로 봉쇄되자 경찰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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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이 경찰의 저지로 봉쇄되자 경찰 간부들을 훈계하는 함석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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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57044
날짜 : 1987.03.03
구분 : 사진필름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국민평화대행진이 경찰의 저지로 봉쇄되자 함석헌 선생이 경찰 간부들에게 훈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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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협정비준반대비상국민대회에서 강연을 마친 함석헌을 보호하며 이동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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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42334
날짜 : 1965.08.14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열렸다. 함석헌(종교인), 백기완(조국수호국민협의회 선전국장)씨 등이 연사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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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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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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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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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통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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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등록번호 : 41043)가 있다. 함석헌 외 30명의 지지성명문 <6ㆍ10 판문점 남북학생회담에 관한 긴급성명> (등록번호 : 94209)도 당시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한 재야 주요인사들의 입장을 살필 수 있다. ‘문익환 방북’ 조건으로 총 81 건, ‘문익환’ 조건으로 총 1492 건 중 방북 관련 412건이 검색되었다. <문익환 목사가 방북 전 주일대사 앞으로 보낸 서한 사본> (등록번호 : 716838), 국토통일원의 <北韓放送聽取速報[문익환목사 방북에 관한 북한 방송 청취보고서]>(등록번호 : 303754),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대한 우리의 견해>(등록번호 : 206503)를 비롯한 각종 성명서, <공동결의문[문익환 선생 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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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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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 484333), 윤보선,김수환,함석헌,윤공희,지학순,나길모,김재덕,경갑용,박정일,최재선,최세구,김관석,박형규,조남기,안병무 공동명의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 - 청계피복지부 노동조합 탄압에 붙여> (등록번호 : 528466), 린다 존스 여사가 기증한 Monday Night Group(월요모임)의 <[Fact Sheet 38]The Peace Market>(등록번호 : 512013), 한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회의가 기증한 평화시장 노동자를 비롯한 6백만 노동자 일동 명의의 <6白ち勞動者の母 李ソスン女史を釋放せよ> (등록번호 : 59961), 사회선교협의회의 <평화시장 이야기> (등록번호 : 94680), 근로자대표(청계피복지부), 한국사회선교협의회 명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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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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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512069), 윤보선, 함석헌 등 15인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청계피복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 (등록번호 : 528466), 1981년 서울시의 청계노조 해산명령에 대하여 명령철회를 요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등록번호 : 333357), 전태일 죽음 이전부터 청계노조 20주년의 역사를 기록한 <청계노조 20년 투쟁사> (등록번호 : 441463), 1984년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하여 정상화시킬 것임을 주장한 <노동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등록번호 : 426076) , 청계노조 강제해산 후 청계노조원상회복추진위원회가 기록한<청계피복노동조합 10년 사건일지>(등록번호 : 425379) 등이 있고, 청계노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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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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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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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함석헌은 그때 일 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해방이 되자 함석헌은 어머니와 형제를 두고 단신으로 월남했다. 아버지가 한의사이자 지주라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쪽 역시 이승만 독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서 그대로 내려온 관리들이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있었다. 민족 사상가로서, 또 민주주의를 바라는 열렬한 행동가로서 함석헌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58년 당시 장준하가 발행하던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처음 실었다.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고 항거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구류 20일의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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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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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씨알, 평화, 생명 늘 대문이 열려있는 집. 그곳에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는 주인이 살고 있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새색시처럼 수줍으나 독재권력 앞에서는 사자처럼 용맹했던 사람. 세상의 가장 낮은 것들을 들어 가장 높은 곳에 올리고자 했던 사람. 씨알의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고 가르쳤던 사람. 함 석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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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추협_ 1987년 직선제개헌쟁취의 불씨를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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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이 요구 사항을 묵살하자 단식이라는 극한의 투쟁 방식을 선택했다. 이즈음 함석헌과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재야인사들이 김영삼의 단식에 동조하여 민주화를 위한 성명서를 냈고, 김수환 추기경도 상도동 자택을 방문하여 단식 중인 김영삼을 위로해 주었다. 단식 8일째인 5월 25일, 김영삼의 건강이 악화되자 노량진경찰서장은 그를 구급차에 태워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긴 뒤 치료를 받게 했다. “총재님, 링거를 맞고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납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김영삼은 고개를 흔들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나를 내버려 두시오.” 김영삼은 병원에서도 단식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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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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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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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17./강릉 한살림
요약설명 : 함석헌 댁을 방문한 바 있고, 1980년 3월 1일 함석헌을 강릉으로 초청하여 강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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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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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권형택
일자/장소: 2019.6.21(1차),7.2(2차)/함석헌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한(恨)인 함석헌 선생 전기를 내다, 세대를 넘어선 동지적 관계, 장준하와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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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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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김종길, 양정애
일자/장소: 2022.8.27/박홍규 자택
요약설명 : 함석헌, 윤흥길 등 민족 계열 문학을 접하였다. 미술동인 두렁의 회원인 이은홍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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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3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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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귀국강연회 “군정종식이 과제” 군사정권하 한일회담 즉각 중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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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3.7.2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22일, 함석헌은 “우리의 당면과제는 군정을 종식시키는 것이며 이 나라의 살길은 참다운 국민운동이 일어나는 길뿐”이라고 말했다. 사상계사 주최로 22일 오전 시민회관에서 귀국 제2회강연회를 가진 함 씨는, “오늘날의 정치는 민중과 동떨어져있다”고 말하고 “지식인들은 권력과 야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일회담을 서두르지 말 것을 촉구하고, “회담이란 것은 양국이 대등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현 정부는 결코 회담을 계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김종필 씨가 “역적이란 말을 듣더라도 기필코 한일회담을 성취시킬 것”이라고 한말을 상기시키면서 위정자의 반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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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하, 고려대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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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3.11.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고립을 초래하는 민족주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의 김종필 강연에 이은 이날의 강연에서 “호사한 호텔 창가에서 샹송을 듣고 짓는 눈물 속에 민족주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감상적 민족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63.11.6 석2면. 이는 장준하가 ‘민족적 민주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언급이었다.(오오타 오사무, 「한국에서의 한일조약 반대운동의 논리」, 『역사연구』 제9호, 2001년, 187쪽) 함석헌도 11월 11일 연세대학교 학생회가 주관한 강연회에서 “군사정부가 ‘민족’이란 말을 내세우는 것은 국민의 자유사상을 짓누르기 위한 복안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홍승면, 「박정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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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4만 청중 매국외교 규탄 “평화선, 3억 불과 바꿀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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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3.2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그만두어라. ▶함석헌(투위지도위원·종교인)) 함석헌은 『사상계』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도 매국외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민중의 각성과 궐기를 촉구했다.(함석헌, 「매국외교를 반대한다!」, 『사상계』, 1964년 4월호(통권 133호), 17쪽)무슨 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 없으니 경관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것이 데모가 아니고 뭣인가. 한일회담을 왜 서두르는가. ‘조속’은 뭣 때문에 조속인가? 세상에 급한 생각을 갖는 놈이 남의 집에 도둑질이라도 하는 법이다. 한일협상은 매국적인 외교다. 이렇게 많은 대중이 반대하는 일을 왜 강행하려는가. 이것이 우리 정부(政府)냐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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