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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Christian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다.종교인들이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었던 시절 종교인들은 집회 장소를 제공하거나 쫓기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조지 오글, 제임스 시노트, 지학순, 박형규, 문익환, 문동환, 김수환, 김병상, 정호경, 김승훈다시 불러보는 이름, 그리운 사람. 인. 크리스챤.
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는 이전부터 대대적이고 노골적인 선거부정이 행해지고 있었다. 자유당이 뿌리는 고무신을 받지 못하거나 막걸리를 얻어먹지 못한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뇌물과 금품이 뿌려졌다. 선거에 익숙하지 않고 글을 모르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가 준비되었으며, 선거일 이전부터 민주당 추천 선거위원과 참관인들에 대한 납치와 폭행, 매수가 자행되었다. 각 선거구마다 30~40%씩 이미 이승만, 이기붕을 뽑은 표가 확보되어 있었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북지역 4월혁명 - 청주
청주시 고등학생 연합시위 계획과 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 시위1960년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시위와 3.15부정선거에 일어난 마산시위에 자극을 받은 청주 시내 고등학생들은 모임을 갖고 시위를 준비했다. 이 때 참가한 학교는 청주공업고등학고, 청주여자고등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 청주기계고등학교 등이었고, 학교별로 15~20명 정도의 학생 대표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4월 9일 장면 부통령 후보 연설 때 시위를 하려다 제지당하고, 10일과 12일 각 학교 대표끼리 시위 봉화를 시도하였으나 역시 제지당했다. 13일에는 각 학교 학생 10명이 모여 밤새 전단지를 만들었고, 다음날인 14일 각 학교에 가서 시위를 하려 했으나 사전발각되어 전단지를 다 뺏기고 시위를 하지 못했다.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에서는 청주공고 학생들만이라도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교문을 가로막는 선생님들을 뿌리치고 200~300명의 학생들이 청주역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학생들은 곧 경찰에 의해 해산됐고, 경찰에 밀려가며 북문로 2가까지 200미터 정도 행진했으나 진압됐다. 경찰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모자와 책가방을 빼앗아가며 시위를 저지했고, 경찰서에 연행된 30-40명의 학생들은 2시간 후 석방됐다. 청주공고 학생들의 시위 이후 청주시 곳곳에는 삼엄한 경비가 계속됐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1960년 4.19를 전후하여 대전, 충청지역에서는 3.8민주의거를 필두로 4월 26일 충남대학교까지 총 9개 학교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3월 8일 대전고등학교의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의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3.8민주시위와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 4월 16일부터 19일에는 청주지역의 청주공고, 청주고, 청주농고의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에는 공주지역 학생연합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4월 18일과 19일에는 청주대학교 시위, 4월 26일에는 충남대학교와 대전 고등학생들의 연합시위가 벌어졌다.
사람.인 Ⅶ
서남동, 박순경, 이이효재, 임기란, 김병상, 김윤수, 오종렬, 정호경, 나병식, 권미경독재에 맞서고 사회 곳곳의 낮은 곳을 향한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설립
학생열사, 박현민을 기억하다
많은 이들은 '6월항쟁'하면 그 시작점이자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박종철고문치사사건)와 이한열 열사(이한열최루탄피격사건)를 기억한다. 하지만 6월항쟁에는 학생, 종교인, 회사원 등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그 뜨거운 열기가 마침내 6.29선언을 이끌어 내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그 참여자 중 박현민이 있다. 1986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박현민은 6월항쟁 도중 3도 화상을 입었다. 이후 1989년 군입대하였으나, 1991년 12월 군에서 얻은 병으로 제대했다. 그리고 박현민은 군 복무 중인 1990년 3월 「특별한 사유없이 연달아 두학기를 등록하지 않으면 자동제적된다」는 학칙에 의해 제적되었다. 제대한 이후 1991년 미등록제적생복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인 학사행정에 맞서 투쟁하였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3·8민주의거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전교생 1천여 명이 시내 곳곳에서 벌인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6백여 명이 시내로 진출하여 벌인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대전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다. 3·8민주의거는 본래 대전고등학교와 대전상업고등학교, 대전공업고등학교, 대전여자고등학교, 보문고등학교 등 대전지역의 여러 고등학교가 함께 준비한 시위계획이었다. 하지만 짧은 준비시간과 사전 발각으로 두 학교 학생만 시위를 할 수 있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는 대구 2·2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2·28민주의거
예정된 대통령 부정선거, 5개월 앞당겨 치룬다니
소리 없이 사라진 조직, 천주교정의구현 전국학생총연맹
1975. 4. 11. 김상진의 할복 자살
산재사망 30주기 컬렉션 Ⅰ
문송면 유가족, 원진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를 포함한 노동, 환경,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산재사망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2018년 5월 16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추모조직위원회(이하 추모위)"를 발족했다. 추모위는 30주기를 맞아 흩어져있던 관련 사진들을 모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하였다. 사료관은 1988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8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사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황유미 등 노동자 산재사망 관련 사진을 컬렉션으로 구성하였다.이번 컬렉션은 원질서존중의 원칙에 따라 기증자가 분류한 그대로 나누었으며, 사진에 대한 디스크립션 또한 기증자의 설명을 따랐다.
백골단, 경찰 사복 체포조의 다른 이름
하늘에는 최루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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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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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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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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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Christian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다.종교인들이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었던 시절 종교인들은 집회 장소를 제공하거나 쫓기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조지 오글, 제임스 시노트, 지학순, 박형규, 문익환, 문동환, 김수환, 김병상, 정호경, 김승훈다시 불러보는 이름, 그리운 사람. 인. 크리스챤.
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는 이전부터 대대적이고 노골적인 선거부정이 행해지고 있었다. 자유당이 뿌리는 고무신을 받지 못하거나 막걸리를 얻어먹지 못한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뇌물과 금품이 뿌려졌다. 선거에 익숙하지 않고 글을 모르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가 준비되었으며, 선거일 이전부터 민주당 추천 선거위원과 참관인들에 대한 납치와 폭행, 매수가 자행되었다. 각 선거구마다 30~40%씩 이미 이승만, 이기붕을 뽑은 표가 확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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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고등학생 연합시위 계획과 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 시위1960년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시위와 3.15부정선거에 일어난 마산시위에 자극을 받은 청주 시내 고등학생들은 모임을 갖고 시위를 준비했다. 이 때 참가한 학교는 청주공업고등학고, 청주여자고등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 청주기계고등학교 등이었고, 학교별로 15~20명 정도의 학생 대표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4월 9일 장면 부통령 후보 연설 때 시위를 하려다 제지당하고, 10일과 12일 각 학교 대표끼리 시위 봉화를 시도하였으나 역시 제지당했다. 13일에는 각 학교 학생 10명이 모여 밤새 전단지를 만들었고, 다음날인 14일 각 학교에 가서 시위를 하려 했으나 사전발각되어 전단지를 다 뺏기고 시위를 하지 못했다.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에서는 청주공고 학생들만이라도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교문을 가로막는 선생님들을 뿌리치고 200~300명의 학생들이 청주역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학생들은 곧 경찰에 의해 해산됐고, 경찰에 밀려가며 북문로 2가까지 200미터 정도 행진했으나 진압됐다. 경찰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모자와 책가방을 빼앗아가며 시위를 저지했고, 경찰서에 연행된 30-40명의 학생들은 2시간 후 석방됐다. 청주공고 학생들의 시위 이후 청주시 곳곳에는 삼엄한 경비가 계속됐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1960년 4.19를 전후하여 대전, 충청지역에서는 3.8민주의거를 필두로 4월 26일 충남대학교까지 총 9개 학교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3월 8일 대전고등학교의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의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3.8민주시위와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 4월 16일부터 19일에는 청주지역의 청주공고, 청주고, 청주농고의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에는 공주지역 학생연합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4월 18일과 19일에는 청주대학교 시위, 4월 26일에는 충남대학교와 대전 고등학생들의 연합시위가 벌어졌다.
사람.인 Ⅶ
서남동, 박순경, 이이효재, 임기란, 김병상, 김윤수, 오종렬, 정호경, 나병식, 권미경독재에 맞서고 사회 곳곳의 낮은 곳을 향한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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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열사, 박현민을 기억하다
많은 이들은 '6월항쟁'하면 그 시작점이자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박종철고문치사사건)와 이한열 열사(이한열최루탄피격사건)를 기억한다. 하지만 6월항쟁에는 학생, 종교인, 회사원 등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그 뜨거운 열기가 마침내 6.29선언을 이끌어 내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그 참여자 중 박현민이 있다. 1986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박현민은 6월항쟁 도중 3도 화상을 입었다. 이후 1989년 군입대하였으나, 1991년 12월 군에서 얻은 병으로 제대했다. 그리고 박현민은 군 복무 중인 1990년 3월 「특별한 사유없이 연달아 두학기를 등록하지 않으면 자동제적된다」는 학칙에 의해 제적되었다. 제대한 이후 1991년 미등록제적생복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인 학사행정에 맞서 투쟁하였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3·8민주의거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전교생 1천여 명이 시내 곳곳에서 벌인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6백여 명이 시내로 진출하여 벌인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대전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다. 3·8민주의거는 본래 대전고등학교와 대전상업고등학교, 대전공업고등학교, 대전여자고등학교, 보문고등학교 등 대전지역의 여러 고등학교가 함께 준비한 시위계획이었다. 하지만 짧은 준비시간과 사전 발각으로 두 학교 학생만 시위를 할 수 있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는 대구 2·2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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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대통령 부정선거, 5개월 앞당겨 치룬다니
소리 없이 사라진 조직, 천주교정의구현 전국학생총연맹
1975. 4. 11. 김상진의 할복 자살
산재사망 30주기 컬렉션 Ⅰ
문송면 유가족, 원진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를 포함한 노동, 환경,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산재사망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2018년 5월 16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추모조직위원회(이하 추모위)"를 발족했다. 추모위는 30주기를 맞아 흩어져있던 관련 사진들을 모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하였다. 사료관은 1988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8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사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황유미 등 노동자 산재사망 관련 사진을 컬렉션으로 구성하였다.이번 컬렉션은 원질서존중의 원칙에 따라 기증자가 분류한 그대로 나누었으며, 사진에 대한 디스크립션 또한 기증자의 설명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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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다.종교인들이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었던 시절 종교인들은 집회 장소를 제공하거나 쫓기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조지 오글, 제임스 시노트, 지학순, 박형규, 문익환, 문동환, 김수환, 김병상, 정호경, 김승훈다시 불러보는 이름, 그리운 사람. 인. 크리스챤.
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는 이전부터 대대적이고 노골적인 선거부정이 행해지고 있었다. 자유당이 뿌리는 고무신을 받지 못하거나 막걸리를 얻어먹지 못한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뇌물과 금품이 뿌려졌다. 선거에 익숙하지 않고 글을 모르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가 준비되었으며, 선거일 이전부터 민주당 추천 선거위원과 참관인들에 대한 납치와 폭행, 매수가 자행되었다. 각 선거구마다 30~40%씩 이미 이승만, 이기붕을 뽑은 표가 확보되어 있었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북지역 4월혁명 - 청주
청주시 고등학생 연합시위 계획과 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 시위1960년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시위와 3.15부정선거에 일어난 마산시위에 자극을 받은 청주 시내 고등학생들은 모임을 갖고 시위를 준비했다. 이 때 참가한 학교는 청주공업고등학고, 청주여자고등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 청주기계고등학교 등이었고, 학교별로 15~20명 정도의 학생 대표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4월 9일 장면 부통령 후보 연설 때 시위를 하려다 제지당하고, 10일과 12일 각 학교 대표끼리 시위 봉화를 시도하였으나 역시 제지당했다. 13일에는 각 학교 학생 10명이 모여 밤새 전단지를 만들었고, 다음날인 14일 각 학교에 가서 시위를 하려 했으나 사전발각되어 전단지를 다 뺏기고 시위를 하지 못했다.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에서는 청주공고 학생들만이라도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교문을 가로막는 선생님들을 뿌리치고 200~300명의 학생들이 청주역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학생들은 곧 경찰에 의해 해산됐고, 경찰에 밀려가며 북문로 2가까지 200미터 정도 행진했으나 진압됐다. 경찰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모자와 책가방을 빼앗아가며 시위를 저지했고, 경찰서에 연행된 30-40명의 학생들은 2시간 후 석방됐다. 청주공고 학생들의 시위 이후 청주시 곳곳에는 삼엄한 경비가 계속됐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1960년 4.19를 전후하여 대전, 충청지역에서는 3.8민주의거를 필두로 4월 26일 충남대학교까지 총 9개 학교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3월 8일 대전고등학교의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의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3.8민주시위와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 4월 16일부터 19일에는 청주지역의 청주공고, 청주고, 청주농고의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에는 공주지역 학생연합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4월 18일과 19일에는 청주대학교 시위, 4월 26일에는 충남대학교와 대전 고등학생들의 연합시위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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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박순경, 이이효재, 임기란, 김병상, 김윤수, 오종렬, 정호경, 나병식, 권미경독재에 맞서고 사회 곳곳의 낮은 곳을 향한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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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열사, 박현민을 기억하다
많은 이들은 '6월항쟁'하면 그 시작점이자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박종철고문치사사건)와 이한열 열사(이한열최루탄피격사건)를 기억한다. 하지만 6월항쟁에는 학생, 종교인, 회사원 등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그 뜨거운 열기가 마침내 6.29선언을 이끌어 내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그 참여자 중 박현민이 있다. 1986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박현민은 6월항쟁 도중 3도 화상을 입었다. 이후 1989년 군입대하였으나, 1991년 12월 군에서 얻은 병으로 제대했다. 그리고 박현민은 군 복무 중인 1990년 3월 「특별한 사유없이 연달아 두학기를 등록하지 않으면 자동제적된다」는 학칙에 의해 제적되었다. 제대한 이후 1991년 미등록제적생복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인 학사행정에 맞서 투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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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전교생 1천여 명이 시내 곳곳에서 벌인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6백여 명이 시내로 진출하여 벌인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대전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다. 3·8민주의거는 본래 대전고등학교와 대전상업고등학교, 대전공업고등학교, 대전여자고등학교, 보문고등학교 등 대전지역의 여러 고등학교가 함께 준비한 시위계획이었다. 하지만 짧은 준비시간과 사전 발각으로 두 학교 학생만 시위를 할 수 있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는 대구 2·2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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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 유가족, 원진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를 포함한 노동, 환경,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산재사망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2018년 5월 16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추모조직위원회(이하 추모위)"를 발족했다. 추모위는 30주기를 맞아 흩어져있던 관련 사진들을 모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하였다. 사료관은 1988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8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사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황유미 등 노동자 산재사망 관련 사진을 컬렉션으로 구성하였다.이번 컬렉션은 원질서존중의 원칙에 따라 기증자가 분류한 그대로 나누었으며, 사진에 대한 디스크립션 또한 기증자의 설명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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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다.종교인들이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었던 시절 종교인들은 집회 장소를 제공하거나 쫓기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조지 오글, 제임스 시노트, 지학순, 박형규, 문익환, 문동환, 김수환, 김병상, 정호경, 김승훈다시 불러보는 이름, 그리운 사람. 인. 크리스챤.
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는 이전부터 대대적이고 노골적인 선거부정이 행해지고 있었다. 자유당이 뿌리는 고무신을 받지 못하거나 막걸리를 얻어먹지 못한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뇌물과 금품이 뿌려졌다. 선거에 익숙하지 않고 글을 모르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가 준비되었으며, 선거일 이전부터 민주당 추천 선거위원과 참관인들에 대한 납치와 폭행, 매수가 자행되었다. 각 선거구마다 30~40%씩 이미 이승만, 이기붕을 뽑은 표가 확보되어 있었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북지역 4월혁명 - 청주
청주시 고등학생 연합시위 계획과 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 시위1960년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시위와 3.15부정선거에 일어난 마산시위에 자극을 받은 청주 시내 고등학생들은 모임을 갖고 시위를 준비했다. 이 때 참가한 학교는 청주공업고등학고, 청주여자고등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 청주기계고등학교 등이었고, 학교별로 15~20명 정도의 학생 대표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4월 9일 장면 부통령 후보 연설 때 시위를 하려다 제지당하고, 10일과 12일 각 학교 대표끼리 시위 봉화를 시도하였으나 역시 제지당했다. 13일에는 각 학교 학생 10명이 모여 밤새 전단지를 만들었고, 다음날인 14일 각 학교에 가서 시위를 하려 했으나 사전발각되어 전단지를 다 뺏기고 시위를 하지 못했다.4월 16일, 청주공업고등학교에서는 청주공고 학생들만이라도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교문을 가로막는 선생님들을 뿌리치고 200~300명의 학생들이 청주역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학생들은 곧 경찰에 의해 해산됐고, 경찰에 밀려가며 북문로 2가까지 200미터 정도 행진했으나 진압됐다. 경찰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모자와 책가방을 빼앗아가며 시위를 저지했고, 경찰서에 연행된 30-40명의 학생들은 2시간 후 석방됐다. 청주공고 학생들의 시위 이후 청주시 곳곳에는 삼엄한 경비가 계속됐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1960년 4.19를 전후하여 대전, 충청지역에서는 3.8민주의거를 필두로 4월 26일 충남대학교까지 총 9개 학교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3월 8일 대전고등학교의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의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3.8민주시위와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 4월 16일부터 19일에는 청주지역의 청주공고, 청주고, 청주농고의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에는 공주지역 학생연합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4월 18일과 19일에는 청주대학교 시위, 4월 26일에는 충남대학교와 대전 고등학생들의 연합시위가 벌어졌다.
사람.인 Ⅶ
서남동, 박순경, 이이효재, 임기란, 김병상, 김윤수, 오종렬, 정호경, 나병식, 권미경독재에 맞서고 사회 곳곳의 낮은 곳을 향한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설립
학생열사, 박현민을 기억하다
많은 이들은 '6월항쟁'하면 그 시작점이자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박종철고문치사사건)와 이한열 열사(이한열최루탄피격사건)를 기억한다. 하지만 6월항쟁에는 학생, 종교인, 회사원 등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그 뜨거운 열기가 마침내 6.29선언을 이끌어 내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그 참여자 중 박현민이 있다. 1986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박현민은 6월항쟁 도중 3도 화상을 입었다. 이후 1989년 군입대하였으나, 1991년 12월 군에서 얻은 병으로 제대했다. 그리고 박현민은 군 복무 중인 1990년 3월 「특별한 사유없이 연달아 두학기를 등록하지 않으면 자동제적된다」는 학칙에 의해 제적되었다. 제대한 이후 1991년 미등록제적생복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인 학사행정에 맞서 투쟁하였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3·8민주의거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전교생 1천여 명이 시내 곳곳에서 벌인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6백여 명이 시내로 진출하여 벌인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대전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다. 3·8민주의거는 본래 대전고등학교와 대전상업고등학교, 대전공업고등학교, 대전여자고등학교, 보문고등학교 등 대전지역의 여러 고등학교가 함께 준비한 시위계획이었다. 하지만 짧은 준비시간과 사전 발각으로 두 학교 학생만 시위를 할 수 있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는 대구 2·2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구술기록으로 보는 2·28민주의거
예정된 대통령 부정선거, 5개월 앞당겨 치룬다니
소리 없이 사라진 조직, 천주교정의구현 전국학생총연맹
1975. 4. 11. 김상진의 할복 자살
산재사망 30주기 컬렉션 Ⅰ
문송면 유가족, 원진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를 포함한 노동, 환경,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산재사망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2018년 5월 16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추모조직위원회(이하 추모위)"를 발족했다. 추모위는 30주기를 맞아 흩어져있던 관련 사진들을 모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하였다. 사료관은 1988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8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사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황유미 등 노동자 산재사망 관련 사진을 컬렉션으로 구성하였다.이번 컬렉션은 원질서존중의 원칙에 따라 기증자가 분류한 그대로 나누었으며, 사진에 대한 디스크립션 또한 기증자의 설명을 따랐다.
백골단, 경찰 사복 체포조의 다른 이름
하늘에는 최루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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