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아카이브의 추천
오픈아카이브가 추천하는 사료는 어떤게 있을까요?
-
사료 콘텐츠
유신의 편린유신시대.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 선포부터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는 1979년까지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는 한국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가 철저히 말살된 ‘한국민주주의의 최대 암흑기’였다. 유신헌법을 선포한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위해 분단상황을 극단적으로 이용했다. 국가안보라는 -
사진 컬렉션
6.10민주항쟁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수립된 제5공화국은 신군부와 관료, 재벌들의 정치권력이다. 5공화국은 1980년대 초반부터 계속되어 온 민중들의 민주화 요구를 공권력을 이용하여 가혹하게 탄압해 왔다. 그러나 2.12 총선을 통해 드러났듯이 국민 대중들은 이미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의식을 표출하고 있었다. 학살, 고문, 부정부패로 얼룩진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국민대중의 저항의식은 개헌요구로 이어졌으며, 1985년 이후의 개헌정국은 이러한 상황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6월 민주대항쟁의 보다 직접적인 배경은 ‘박종철씨 고문치사사건’과 전두환의 ‘4.13호헌조치’였다.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고문치사 사건은 독재정권의 폭력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으며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한 경찰 고위 간부들의 행태는 정권의 비도덕상과 파렴치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였다. 박씨 사건이 터지자 학생운동을 비롯한 재야세력은 즉각적으로 대응하였다. 각계각층에서 고문치사를 규탄하는 성명서가 잇따라 발표되었고, 2월 7일 ‘고 박종철군 추모대회’와 3월 3일 ‘고문추방 민주화대행진’은 경찰의 강력한 탄압 속에서도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결집하였다. 특히 5월 18일에 발표된, 박종철씨 고문치사사건의 조작과 은폐를 폭로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은 사건의 조기수습을 노리던 정권 측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국무총리와 안기부장을 경질하는 부분적 개각에도 불구하고 범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박씨 사건은 전두환의 이른바 4.13호헌조치에 격렬히 저항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
구술 컬렉션
김을규구술자 김을규(활동명 김성규)는 195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 청년기부터 도시 빈민의 현실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직접 체감하며 성장했다. 1980년대 중반 양평동 철거 현장에서 주민조직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철거민운동에 뛰어들었고,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지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980년대 통일운동1. 6ㆍ10 남북학생회담 추진 및 8ㆍ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 1988년 3월 29일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 유세 과정에서 김중기 후보는 ‘김일성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을 통해 남북한 국토 종단 순례 대행진과 민족 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체육대회를 제안하였다. 북한은...
민주화운동 일지
과거 그리고 지금, 우리
역사에서 일상으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지난 오늘의 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