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 살해 후 체포

  • 공유하기
10월 26일 저녁 6시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50번지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과 만찬을 가졌다. 7시경 김재규는 만찬석에서 나와 집무실에 가서 육군참모총장 및 제2차장보를 만난 후 2층 침실로 가서 미리 준비해둔 권총 1정을 하의 주머니에 넣고 식당으로 돌아갔다. 7시 40분경 김재규는 중앙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 박선호, 중앙정보부 비서실 부장수행 비서관 박흥주와 접선하여 첫 총성을 신호로 경호원 5명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다. 김재규는 만찬석으로 돌아와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 1발씩 저격했다. 권총의 격발장치 고장으로 연발되지 않아 식당 밖으로 나가 박선호로부터 리볼버 권총을 받아 문을 잠근 후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순차로 각 1발씩 발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7시 50분경에 차지철, 정인형(대통령 경호실 경호처장), 안재송(부처장), 김용태(특수차량계장), 김용섭(수행원) 등과 함께 사망했다. 김재규는 6시 30분경부터 본관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 김정섭과 동승하여 오후 8시 5분경 육군본부 벙커에 도착했다. 김재규는 각 군 참모총장들에게 3일간 대통령 서거 사실의 보안유지를 역설하며 주요 군 장성과 군무위원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록 유도했다.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은 대통령의 유해를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후송하여 당직 군의관 소령 송계용에게 사망 사실 진단을 확인했다. 8시 40분경에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사무실로 가서 비상소집된 최광수 등 대통령 수석비서관 7명과 전 경호실차장 육군 중장 이재전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입원 사실을 알리고 경계태세 강화를 요청했다. 8시 50분경 김계원은 최규하 국무총리에게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사실을 허위보고했다. 김계원은 최규하 국무총리, 구자춘 내무부장관, 김치열 법무부장관과 함께 9시 30분 경 육군본부 벙커에 도착했다. 김재규는 노재현 국방부장관 및 중요직 군 장성들과 각부 장관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보안유지를 강조하며 대통령 유고에 따른 국내치안 질서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계엄령 선포를 건의했다. 11시 30분경 김계원은 김재규의 주장이 관철될 기미로 보이지 않자 태도를 돌변하여 국방부장관 부속실에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실을 알렸다. 김재규는 군 수사기관에 체포되었다. 김재규, 김계원,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중앙정보부 비서실 경비원), 유성옥(중앙정보부관리국 파견운전사), 김태원(중앙정보부 비서실 경비원), 유석술(중앙정보부 비서실 경비원) 등 8명이 내란목적 살인, 내란미수, 증거 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대통령 시해사건」 『경향신문』 1979.10.28. 1면;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 「공소장 [10.26사태 주모자인 김재규 등 관련자에 대한 공소장]」, 1979.11.26.,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879773)
분류
정치·경제·국제관계 / 정부·여당 1979-10-26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