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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으로 보는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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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으로 한국 사회는 큰 슬픔에 휩싸였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동시에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길에는 현직 대통령부터 종교를 뛰어넘어 수많은 인사들이 함께했다.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에는 40만명에 가까운 국민이 조문을 하면서 추기경의 떠남을 아쉬워했다.
1922년에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은 일제강점기, 광복을 거쳐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질곡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보내며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정치와 사회가 균형을 잃고 정의가 위협받을 때는 참된 정신의 상징으로, 갈등과 이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는 시대의 스승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소리 없는 자의 소리가 되어준 큰 어른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기록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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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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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9일 밤,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황금동 소재 미국문화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건물의 지붕에서 일어났는데 신속하게 진화되었다. 경찰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고 언론에 알렸고 그렇게 보도되었다. 발화의 원인이 전기누전에 있다고 말해지기도 했으나, 경찰은 방화를 인지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이 사건의 직접적 관련자는 총 5명으로 김동혁, 정순철, 임종수, 윤종형, 박시영이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종수를 12월 10일 별건의 시위기도 배후로 보고 연행하여 조사했다. 얼마 후 동부경찰서로부터 임종수가 방화 관련자라는 정보를 듣고 폭력을 동반한 취조가 이루어졌다. 임종수는 연행 3일째 되던 날 전모를 밝혔다. 경찰은 김동혁을 연행하고 이어서 박시영을 체포했지만 나머지 2명은 도피하여 사건을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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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컷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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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시로 보는 탄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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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기록으로 보는 2·28민주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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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대통령 부정선거, 5개월 앞당겨 치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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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인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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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폭압의 시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많은 시국사건을 변론하고 상식과 양심의 편에서 불의와 억압에 맞선 이들이 있습니다.
김창국, 홍남순, 이태영, 조영래, 조준희, 이돈명, 노무현, 최영도, 황인철
그리운 그들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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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골단, 경찰 사복 체포조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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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최루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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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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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를 전후하여 대전, 충청지역에서는 3.8민주의거를 필두로 4월 26일 충남대학교까지 총 9개 학교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3월 8일 대전고등학교의 시위와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의 시위를 통틀어 일컫는 3.8민주시위와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 4월 16일부터 19일에는 청주지역의 청주공고, 청주고, 청주농고의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에는 공주지역 학생연합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4월 18일과 19일에는 청주대학교 시위, 4월 26일에는 충남대학교와 대전 고등학생들의 연합시위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