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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망 30주기 컬렉션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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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 유가족, 원진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를 포함한 노동, 환경,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산재사망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2018년 5월 16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이하 추모위)"를 발족했다. 추모위는 30주기를 맞아 흩어져있던 관련 사진들을 모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하였다. 사료관은 1988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8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사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황유미 등 노동자 산재사망 관련 사진을 컬렉션으로 구성하였다.

이번 컬렉션은 원질서존중의 원칙에 따라 기증자가 분류한 그대로 나누었으며, 사진에 대한 디스크립션 또한 기증자의 설명을 따랐다. 

1988년 문송면

문송면은 태안중학교 재학 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서울로 상경하였다. 1987년 12월 온도계·압력계 제조업체인 ‘협성계공’에 입사하여 영등포 공장에서 신나와 수은을 취급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988년 1월 불면증과 두통, 식욕감퇴, 고열 등 이상 증세가 생겨 입사 두 달만인 1988년 2월 8일 병가를 냈다. 그러던 중 며칠후 집에서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했지만 병명도 알지 못하고 퇴원했다. 그리고 3월 9일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 진단을 받았다. 성모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던 중 7월 2일 구토하다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였다. 문송면의 가족들은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노동부가 계속 반려하여 사망 2주전인 6월 20일이 되어서야 산재로 인정됐다.

각계 각층이 참여한 문송면군 장례위원회는 이러한 사실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노동부 서울남부지방사무소장 구속과 노동부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노동부와 사업주가 노동자를 지켜주지 않는 한국사회를 고발하였다.

1988년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

원진레이온 참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일대에 있었던 원진레이온의 합성섬유 공장에서 일어났던 사고로,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힌다. 당시 공장에서는 펄프에 이황화탄소, 황화수소, 황산 등을 써서 실을 만들었는데, 유기용제인 이황화탄소에 노출되는 작업에 500여명이 투입되고 있었다. 노후된 기기에서 발생한 불순물인 이황화탄소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직원의 상당수가 황화수소 가스에 중독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호흡기나 피부 접촉을 통해 유인된 이황화탄소는 인체에 유입돼 전신이상과 뇌경색, 신부전증 등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사망자 8명, 장애판정 637명이 발생했다.

김봉환씨는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한채 1991년 사망했고, 같은 해 권경용씨는 방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다. 1992년 고정자씨는 정밀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다가 목욕탕 수도꼭지에 스카프를 감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부는 원진레이온의 위법 사실을 파악, 발표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산재 노동자들은 1개월간의 요양치료를 받고 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황화탄소 중독이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했지만 노동부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재요양신청을 거부하였다.

1990년대 활동

산업재해 추방운동은 199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산업재해추방을 위한 문화한마당 등 산재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한 행사들이 열렸고, 1999년에는 사업장유기용제 역학조사와 건강검진사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창원대우중공업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요양중단 통보로 자살한 노동자 이상관의 죽음을 계기로 산재인정범위 확대 투쟁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