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봄.서슬 푸른 박정희 유신 정권이 그악스럽게 칼을 휘두르던 무렵. 산천도 입을 다물고, 사람들도 입과 귀와 눈을 막힌 채 침묵하던 시절.서울중앙지방법원에 우리나라 최고의 원로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 나타났다. 노환으로 못 나온 윤보선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문익환, 김대중, 함세웅, 정일형, 문정현, 김승훈, 이태영 등 기독교 신구교와 재야 지도자들이 나란히 법정 피고석 자리에 앉았다.그들은 얼마 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서명하고 지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분이 있었다. 하얀 수염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훤칠한 이마의 노인. 바로 함석헌 선생이었다.“피고들은 3·1절 기념미사가 거행된 명동성당에서 민주회복이라는 명목 아래, 소위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여 청중을 선동하여 시위를 촉발시킴으로써 민중 봉기를 확산하고, 나아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를 이용하여 현 정부를 전복, 정권을 탈취할 것을 획책하였다.”판에 박힌 검사의 논고와 또한 판에 박힌 판사의 결심.팔순을 바라보는 사상가이자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의 처분을 받았다. 그에 대한 조금의 존경심도 없었던 박정희 군사정권의 단말마적 중형이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이미 수많은 고난을 받아왔던 그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노년의 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훈장에 불과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