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30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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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의 발전을 위한 우리의 주장 [초고]
등록번호 : 00858969
날짜 : 1987.05.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창희
요약설명 : 등 심각한 위기에 빠진 서울신문의 발전을 위한 편집국기자 70여명의 사장 퇴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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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의 발전을 위한 우리의 주장 [인쇄본]
등록번호 : 00858979
날짜 : 1987.05.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창희
요약설명 : 서울신문의 발전을 위한 편집국기자들의 사장 퇴진 요구 등의 주장 -이진희 사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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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2004년 5월 28일 서울신문 신문 스크랩
등록번호 : 00924266
날짜 : 2004.05.28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28일 서울신문 문소영, 구혜영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스크랩으로 ""노대통령도 입각때...
사진사료 4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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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증언을 일삼는 서울신문 마산지국장 이필재
등록번호 : 00700155
날짜 : 1960.03.2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당시 서울신문 마산지국장 이필재 씨는 국회조사단 앞에서 선서한 후 3월 15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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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보부의 요미우리 신문의 서울지국 폐쇄조치에 따라 신문 지국장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
등록번호 : 00715188
날짜 : 1977.05.0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신문사 편집국장이 평양에서 한 발언이 문제되어 문화공보부가 요미우리 신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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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업 수석대표와 이근경 대표가 서울에서 온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
등록번호 : 00718185
날짜 : 2000.11.1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주최의 환송 만찬에 출발하기에 앞서 양측대표가 서울에서 행낭편으로 온 신문에 실린...
박물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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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통일운동
요약설명 : 총 146 건이 검색되었다. <전대협 임수경 대표가 7월 27일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귀환하는 것과 관련해서 6백만 학부모와 4천만 민중에게 보내는 호소문>(등록번호 : 362695),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상임위원 신부일동 명의로 된 서한 <존경하올 주교님[임수경 방북 관련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수신:아시아주교회의 인성회 책임주교 하마오,발신: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남국현]>(등록번호 : 314087),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성명서 <성명서-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임수경 전대협 대표와의 동행 결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등록번호 : 130628), 임수경 관련 한겨레신문 스크랩 (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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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필화사건
요약설명 : <서대문 옥중에서 어머니 영전에 보낸 눈물 젖은 친필 엽서>(등록번호 : 530458), <증인소환장>(등록번호 : 530490), <친필 항소이유서>(등록번호 : 530426), <상고이유서>(등록번호 : 530455) 등 리영희 교수가 기증한 사료만 120여점이 된다. 린다 존스여사가 기증한 <1977 Human Rights Declaration of the Literary Council for the Realization of Freedom>(김지하 양성우 리영희 석방요구)(등록번호 : 471563),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보낸 (등록번호 : 530448) 등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 필화사건과 관련된 1964년 11월 20일 자 <서울신문 스크랩>(등록번호 : 530433)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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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요약설명 :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중 민족 민주선언>은 원본이 아니라 독일에서 발간된 신문에 결의문이 생략된 채 부분 개제된 것이다. 1973년 4월 3일 이화여자대학교 명의의 <선언문>(등록번호 : 480506)은 “오늘 오후 2시, 우리 이화인은 서울시내 전 대학생이 모이는 시청앞 광장과 청계천 5가 네거리에 집결한다”라고 행동사항을 밝혀 민청학련의 통일된 행동지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974년 3월 21일 경북대학교의 <反獨裁民主救國宣言>(등록번호 : 440716) 역시 원본이 아니라 일어로 번역된 요약본만이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 민청학련 관련자들의 구속 이후 각종 재판자료와 호소문,...
사료 콘텐츠 4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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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요약설명 : 경찰에서는 누가 잡혀 왔는지도 가족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신문에서는 민청학련이 국가전복을 꾀한 반국가단체라 떠들어대고,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 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식은 자식이었다. 어디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라도 알아야 했다. 어느 날, 민청학련사건의 주동자로 사형을 선고받고 나중 유명한 시인이 된 김지하의 어머니가 기독교회관 301호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기장여신도회 사무실이었다. 기장여신도회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회정의나 인권, 민주화에 관심을 가진 여성단체였다. “여보시오. 당신들은 무얼 하시오? 죄 없는 우리 아들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게 생겼는데... 제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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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회복의 교육을 詩로 노래하다_ 성래운
요약설명 : 민주주의에 우리 교육이 뿌리박지 못한데서 온 것이다.’ 성래운과 송기숙은 그것을 서울, 부산 지역 교수들과 함께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칫 구속되거나 해직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다들 마지막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전남대 교수 11명만 서명하였다. 성래운은 그것을 AP통신과 아사히신문 등 외신에 전달했다. 과격한 내용도 아닌 이 선언서 하나가 유신 치하 잠들어있던 광주를 흔들었다. 다음날,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서명에 참가한 교수 11명을 긴급 체포했고,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기도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7월 5일에는 전남대에 휴교령이 떨어졌다. 주동인 송기숙 교수는 재판에 넘겨져 대통령 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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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의 메카_ 추억의 세실레스토랑
요약설명 : 기자회견의 등불을 가장 먼저 켜는 곳이었다. “아무개 단체의 누구누구가 오늘 아침 서울 정동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로 시작되는 문장은 라디오 방송이나 신문 사회면의 대표적인 상투어 중의 하나였다. 추억의 그곳. 세실레스토랑 경식은 아내랑 광화문에서 차를 내려 정동 뒷길을 걸어 세실레스토랑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 그 추억의 경양식집이 곧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눈이라도 오려나?” 경식은 끄무레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오래간만에 아내와 같이 걸어보는 덕수궁 돌담길. 이곳에 오면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구술 컬렉션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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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신동호)
일자/장소: 2010년 8월 13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얻어 타고 신문사에 갔더니 들어갈 수 없었다. 윤전기와 사옥은 나중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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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22.8.9.(1차), 8.10.(2차), 8.11.(3차), 8.12.(4차), 8.16.(5차), 8.17.(6차), 8.20.(7차), 8.21.(8차) /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제거 계획, 서울신문사 입사와 박정희 정권 시기의 언론 상황, 문세광 저격 사건,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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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면담자 : 김용재,이영조
일자/장소: 2010년 7월 13일/대전 기획출판 오름
요약설명 : 《서울신문》의 논조는 정부 쪽 이야기만 하고 반대되는 의견을 전혀 제시하지...
일지사료 2,4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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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탈당 홍순희, 조정훈, 김주묵, 박봉애 의원 자유당 입당
일자 : 1959.1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국회 의석은 자유당 146석, 민주당 77석, 무소속 9석이 되었다.『서울신문』1959. 12. 2 석1면 ;『동아일보』1959. 12. 2 석1면. 민주당 의원의 탈당 문제는 향후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1959년 11월 26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유당은 비밀리에 탈당성명서 용지를 만들어 민주당 이탈의원들의 도장을 받고자 접촉하였다. 적당한 시기에 발표한다는 전제를 두고 민주당 탈당 예정자들은 이 용지에 도장을 찍었다. 경위는 대체로 탈당성명서에 도장을 찍고 이기붕 의장을 만난 후 자유당 입당지원서를 쓰는 것이었다. 자유당 측에서는 이들에게 야당 생활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거액의 수표를 주었다. 액수는 1천만 환에서 3천만 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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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조순 선전위원장, 정·부통령 동일티켓제 주장
일자 : 1959.1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2일 오전, 자유당조순 선전위원장은 1960년 정·부통령선거는 동일티켓으로 해야 하며, 정·부통령이 각기 다른 당에서 선출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주장하였다. 민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순은 국민이 정·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소속당의 정책을 지지해서 4년간 정권을 맡기는 것이라 하면서, 민주당에서도 정·부통령 후보를 공천해 놓고 장면 부통령이 동일티켓제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였다.『서울신문』1959. 12. 2 석1면 ;『동아일보』1959. 12. 2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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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찬양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개봉
일자 : 1959.12.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반공예술인단의 단장인 임화수가 제작을 맡았다. 감독은 신상옥, 이승만 역에는 배우 김진규가 출연하는 등 유명 배우가 총 출동하였다. 영화는 “한국영화 10년의 투쟁과 수난의 역사는 오로지 이 한편의 위업을 완결하기 위한 우리 영화인들의 생생한 기록이었다!”라는 문구로 선전되었으며, 전국을 돌며 정· 부통령선거 때까지 계속 상영되었다.『동아일보』1959. 12. 1 조2면 영화 제작비 4천만 환은 자유당 당무위원회가 결의하여 선거자금에서 지출하였고, 이 자금은 공보실을 통해 제작자인 임화수에게 전달되었다.자유당의 한희석은 1960년 5월 17일 서울형무소에서 이같은 사실을 자백하였다(『경향신문』1960. 5. 18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