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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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서울일 위수령 해제
등록번호 : 00867042
날짜 : 1971.11.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요약설명 : 오늘 새벽 4시 기해 전출동병력 원대복귀 수도권 중심 방위태세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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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선언-71년 위수령에 대한 각계 각층의 선언문
등록번호 : 00085340
날짜 : 1971.10.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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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선언[서울일원에 선포된 위수령과 각 대학의 휴업령을 즉시 철회하라]
등록번호 : 00480001
날짜 : 1971.10.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학생에 대한 부당한 연행과 인권유린을 중지하고 체포된 학생들을 즉각 석방하라...
사진사료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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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이 발동되자 "별령이 있을 때까지 학생회, 대의원회 및 그 산하단체의 활동과 간행물 ...
등록번호 : 00712535
날짜 : 1971.10.1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위수령에 의거, 수도경비사령부에 병력지원을 요청했다. 비슷한 시각 문교장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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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거사건으로 극도로 치안질서상태가 불안하여 위수령이 발동되어 39보병사단 병력이 마산...
등록번호 : 00577805
날짜 : 1960.04.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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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이 발동되고 난 후의 신마산역전앞 광경, 어린청소년들이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등록번호 : 00577809
날짜 : 1960.04.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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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
요약설명 : 민주수호국민협의회결성준비위원회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대회 및 4월혁명 11주년 기념식> (등록번호 : 99480),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의 <告發狀> (등록번호 : 480059)과 <資料集> (등록번호 : 193803), 이신범이 생산한 <자유의 종 제17호> (등록번호 : 82763)와 <자유의 종 제18호> (등록번호 : 82762), 전국대학언론인협회의 <필맥 제10호> (등록번호 : 431974) 등의 문서사료와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위수령이 발동되자 "별령이 있을 때까지 학생회, 대의원회 및 그 산하단체의 활동과 간행물 발간을 일괄금지한다" 는 공고문을 낸 사범대학장> (등록번호 : 712535) 등의 사진사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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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문제대책위원회사건
요약설명 : ‘병역문제대책위’ 조건으로 1건, ‘이범영’ 조건으로 1건, ‘백계문’ 조건으로 1 건, ‘김영종’ 조건으로 1건, ‘한동철’ 조건으로 1건, ‘손인범’ 조건으로 1건, 양관수 2건, 문국주 2건, 장만철 1건 등 각각의 직접적 관련사료들이 검색되었다. 병역문제대책위원회가 생산한 <병역문제대책위 선언문 제1호> (등록번호 : 85380), 병역문제대책위원회의 결의문 <병역의 의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김영종, 한동철, 손임범의 현역입영 처분을 취소하라> (등록번호 : 394179), 이범영 외 28인의 <성명서> (등록번호 : 1882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의 <인권소식 제4호> (등록번호 : 57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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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수호운동
요약설명 : 사료관은 ‘민주수호 국민협의회’ ‘민주수호 청년협의회’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 ‘민주수호 기독청년협의회’ ‘전국학생연맹’ 관련 성명서, 결의문, 보고서 등 26건의 사료를 소장하고 있다. ‘민주수호 국민협의회’와 관련하여 <資料集>(등록번호 : 193802), <資料集(第二輯)>(등록번호 : 99479) 은 민주수호 국민협의회의 결성과정, 회의, 성명서 등 활동 전반과 관련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다.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의 활동과 관련하여 <靑年ㆍ學生ㆍ參觀ㆍ指針書>(등록번호 : 99476), <4.27선거 무효 선언>(등록번호 : 93918), <4·27선거 학생참관 임시보고서>(등록번호 : 99477) 등의...
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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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위의 행정명령, 위수령
요약설명 : 위수령의 탄생 1950년 3월 27일 대통령령 제296호로 위수령이 탄생하였다. 한국전쟁 직전 공비 토벌을 위하여 제정되었다고 하는데(한국민주화운동사 1, 463쪽) 법의 실제 내용은 육군의 질서와 군기 유지, 군사시설물 보호 목적으로 제정되었고, 병력출동은 재해 또는 비상사태 시에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의 요청을 받았을 때, 육군 참모총장에게 상신하여 그 승인을 얻어 응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 1950년 제정 당시 조항[(시행 1950.3.27.) 대통령령 제296호, 1950.3.27., 제정] 제1조 본령은 육군군대가 영구히 일지구에 주둔하여 당해지구의 경비, 육군의 질서 및 군기의 감시와 육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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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요약설명 : 잦아들지 않고 더욱 커져 가자, 박정희 정권은 20일 마산, 창원 일대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인들을 대거 투입하였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대학과 공장, 길거리 요소요소에 배치되었다. 그래도 시위가 계속되면 곧 공수부대까지 투입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계엄사령부에서는 야간 통행금지를 2시간 연장하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여 좁은 유치장에 가두고 끔찍한 고문을 가하였다. 불순분자의 책동이나 북한의 사주를 받은 시위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것이었다. 정말 박정희의 예언대로 다시 그런 시위가 벌어졌다면 부산과 마산에서 끔찍한 피의 대학살이 벌어지고 말았을 것인가. 역사는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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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이 남긴 것들
요약설명 : 일어난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적인 반대운동에 대해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국민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은 채 1965년 12월 28일을 기해 기어코 한일협정을 발효시킴으로써 을사늑약 60년 만에 다시 한일국교를 열었다. 그때 국민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일본에 대해 시종일관 굴욕적이고 저자세로 일관한 군사정권의 태도에 대한 강력한 민족주의적 분노였다. 한일협정의 결과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한일 간에 현존하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드러난다. 지금도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1992년 1월에 시작한 수요집회가 이어지고 있고,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
구술 컬렉션 4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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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현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8.22./전주시 문화빌딩 휴스템코리아
요약설명 : 위수령이 발동되면서 백남운과 이동명 등 선배들이 군대로 끌려가거나 제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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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영
면담자 : 송철원
일자/장소: 2019. 10. 13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15일 위수령이 발동되자 배후조종자로 몰려 보안사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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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19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 교련반대운동 - 광화문시위 후 도피생활 - 전국학생연맹 - 위수령과 '양심선언'
일지사료 8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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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데모 저지에 병력투입
일자 : 1965.4.19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수도경비사령부 병력 외에도 군에서 지원해 주도록 결정했으며 이는 위수령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와 같이 병력사용계획을 3군총참모총장에게 지시, 이러한 사항은 유엔군 측과도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65.4.19 석1면. 1964년과 같이 반대운동이 다시 중대한 사태로 발전할 것을 경계한 당국은 이에 재빨리 대응한 것으로, 시위의 전개 여하에 따라서 초강경 경비체제를 세울 준비가 된 것을 의미했다. 그에 따르면 이에 더하여 정부는 문교부를 통해 4·19를 맞아 서울 시내의 각 대학과 고교에 ‘자주’ 휴교조치를 취하는 한편, 투위를 불법단체로 규정하여 야당으로 하여금 원내투쟁으로 전술 변환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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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지원 지시는 실질적 계엄효과
일자 : 1965.4.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20일 오전, 야당은 국방부가 시위 저지에 병력지원을 하기로 한 데 대해 “실질적인 계엄의 효과를 노리기 위한 악랄한 수법”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4월 17일 데모를 정부전복을 위한 계획적 음모라고 한 치안국 발표에 대해 적반하장 격이라고 반박했다. 민정당박한상 대변인은 “위수령은 일본군국주의 시대의 악법”이라고 전제, “이를 악용하여 실질적인 계엄의 효과를 노리기 위한 악랄한 수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투위 김수한 대변인은 당국이 대일매국외교 반대투쟁을 정부전복의 음모라고 하여 야당 국회의원을 입건한다고 나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동아일보』 1965.4.20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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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일원에 위수령 발동
일자 : 1965.8.2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각 대학생들은 거리로 밀려나오는 등 긴장은 더없이 고조됐다. 정부는 수도경비사 병력뿐 아니라 서울 근교의 예비사단, 야전군 소속 1개 사단 병력을 동원, 6일째 계속되는 학생시위에 대처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야당 및 원외정치세력은 26일부터 입을 모아 총선거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김성은국방장관은 26일 오전 “우려되는 데모사태에 대비, 이날부터 서울 근교에 있는 야전군 예하 제6사단 일부 병력에 위수령이 적용되어 서울에 투입되고 있으며, 사태 진전에 따라 병력의 증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와 같은 “병력동원은 이날 아침 유엔군 사령관 겸 미8군 사령관이 비취 대장과도 협의한 결과”라고 밝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