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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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화위원회 위원추천
등록번호 : 00977010
날짜 : 1980.08.2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록
요약설명 : 정화운동 추진지침에 의거하여 중앙정화위원회의 위원을 추천한다는 내용이 수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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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화위원회 위원추천 (교체)
등록번호 : 00977011
날짜 : 1980.08.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록
요약설명 : 정화위원회 위원이 건강상 문제로 활동할 수 없어서 교체를 추천하는 내용이 수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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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정화위원 위촉 및 위촉통제
등록번호 : 00977012
날짜 : 1980.08.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록
요약설명 : 정화운동 추진지침에 의거해 전국섬유노동조합 정화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다는...
사진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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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요약설명 : 8월 4일 국보위는 각종 사회악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정화하고 사회개혁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사회악일소 특별조치'를 발표하고, 포고령 제13호에 의거한 삼청작전으로 1980년 8월 1일부터 1981년 1월까지 5개월간 4차에 걸쳐 60,755명을 법원의 영장 없이, 지역별 인원할당까지 동원하여 체포하였다. 폭력배를 일소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검거된 사람들 중에는 어용노조간부의 멱살 한 번 잡았다는 노동자, 체불임금 내놓으라고 사장에게 대들었다는 노동자,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 논에 물대는 문제로 싸웠다는 농민, 가족회의 중 언성을 조금 높였다고 해서 존속폭행죄를 뒤집어 쓰고 끌려온 이발사, 몸에 문신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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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장한 출정식 이야기 - 독립군 무명용사의 묘에서
요약설명 : 1985년 정화작업을 거쳐 지금은 제법 번듯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100여평쯤 되어 보이는 묘역 오른쪽에 ‘광복군선열지묘(光復軍先烈之墓)’라는 비석이 서 있었다. 묘 뒤편에는 대한민국순국선열숭모회 등 10여개 민간단체들이 올 2월에 참배하고 걸어 놓은 플랭카드가 눈에 들어오는데 “후손 없는 광복선열! 참배하는 애국국민!”이라는 구호가 이채로왔다. 묘 둘레에 심어놓은 관목 위에는 어느 참배객이 꽂아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하얀 조화들이 점점이 꽂혀 있었다. 준비해간 술을 한잔 따라 올리고 함께 두 번 절했다. 그리고 머나먼 이역 땅에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산화해간 그분들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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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끝났다. 언론사를 장악하라! - 1980년, 언론통폐합
요약설명 : ‘정화계획서’ 속에 들어있던 것이었다. 자체 정화라는 합법적 탈을 쓰고 있었지만 폭력적인 강제해고였다. 그 계획서에 따라 1980년 7월 29일 신문협회와 방송협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언론인 해직조치를 단행하였고, 8월 16일 933명이 데스크를 떠나 바람 부는 거리로 쫒겨났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이 집권하고 있는 한 영구히 언론에 재갈을 물려둘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 작업에 뛰어 든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5공 내내 ‘쓰리 허’ 중의 하나로 통하는 허문도였다. 여기서 ‘쓰리 허’란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출신의 허화평, 보안사령부 인사처장을 지낸 허삼수를 뜻한다. 5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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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발족키로 결정
일자 : 1960.2.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6일 오후,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책임위원회를 소집하여 ‘공명선거추진위원회’(가칭)를 발족하기로 결정하였다.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14일 정식으로 공명선거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고, 민총 간부들과 정계, 학계, 문화계, 법조계, 언론계, 종교계, 경제계 등 각계각층의 인사를 망라한 광범위한 조직을 꾸릴 것을 결정하였다. 이 위원회에는 김병로, 서상일, 장리욱, 이관구 등 민총 지도위원이 자동으로 포함되며, 과거 민총 간부로 있다 탈퇴한 전진한, 정화암, 이인, 신숙 등에게도 참가할 것을 권고 하였다.『조선일보』1960. 2. 9 석1면 ;『동아일보』1960. 2. 7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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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정치지도자 13인, 정부에 국민총의 존중 건의
일자 : 1960.4.20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정화암)은 20일 오전부터 김병로 자택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대정부 건의안을 결의하였는데, 이 건의안은 이날 오후 3시 반 경 이인·이규갑·이관구 등 3명의 대표에 의해서 수석국무위원 홍진기내무장관과 김정렬국방장관에게 전달되었다. 이날 오후 국회기자실을 찾아온 이인 등에 의해 발표된 건의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동아일보』1960. 4. 21 석1면재야정치지도자 13인의 대(對)정부 건의안금반의 학생데모사건은 드디어 계엄령의 선포까지 보게 되었다. 이른바 이 비상사태는 멀리는 민국정부 수립 이래 12년간 누적된 사회적 정치적 불안에 연유한 것이며, 가까이는 3·15선거부정으로 유치된 것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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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부통령 사퇴
일자 : 1960.4.2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장면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부통령 사임서를 발표하고, 이승만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였다. 장면부통령은 이날 긴급히 소집된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 석상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후 곧 사임서를 국회사무차장에게 접수시켰다. 그는 이날 사퇴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오래 전부터 고려해 온 것이다. 3·15정·부통령선거의 불법적 무효를 주장하는 전 국민과 학생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행정부에 일대 경종을 울리기 위해 사퇴한다”고 말하였다.『동아일보』1960. 4. 23 호외 ;『조선일보』1960. 4. 23 호외장면 부통령 사임서1. 본인은 오늘로서 부통령직을 사퇴한다. 3·15 불법선거로 인하여 3천만 동포의 울분은 드디어 절정에 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