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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의과대 학생 일동, 호소문 발표

호소문 사회인들이여, 우리의 정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시라

그간 40여 일 간을 사회의 물의를 일으켜 온 의대생들의 정(鄭)·이(李) 양 교수 배척운동은 단순한 사감이나 외부세력의 선동에 의한 난동이 아니며 이는 어디까지나 정의와 인도(人道)를 사랑하는 젊은 세대들의 불의와 비인도(非人道)에 대한 처절한 반항입니다. 지난 5월 5일 본 의대 학원 민주화를 위하여 정·이·최(崔) 세 교수의 자퇴를 결의한 저희들 396명 중 384명은 그간 이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학교당국과 문교부에 직접 호소함과 동시에 모든 법적절차를 밟아 이의 조속한 해결을 직접 호소함과 동시에 모든 법적절차를 밟아 이의 조속한 해결을 모색하기에 전력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문교부 당국은 적극적 태도로서 이 문제해결에 임하여 양 교수의 비행을 인정하여 정·이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도록 징계요구서를 조속한 시일 내에 문교부에 상신할 것을 김상열 총장과 이성관 학장서리에게 지시(5월 28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은 이 징계신청원의 상신을 차일피일 미루어 사태수습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귀중한 40여일을 희생한 의대생들은 이 이상 더 학교당국에만 의존할 수 없어 저희들 독자적인 투쟁으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 교수는 자신의 비행을 뉘우치기는커녕 정 교수 자신이 손(孫)·허(許) 양 조교를 강압적으로 시켜서 함(咸) 군을 고발한 것은 사회가 주지하는 엄연한 사실마저 번복시켜 학생고발인은 당시 손·허 양 조교의 자발적 처사이며 자기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모든 책임과 오명을 이 양 조교에게 전가하는 파렴치한 행위로서 자신의 구명책을 합리화하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므로 40여일이란 귀중한 희생을 바쳐온 저희들은 이 이상 더 참을 수 없어 마침내 6월 2일 학생총회에서는 두 교수를 비민주적 학원의 원흉으로 재(再)규탄하고 우리의 신성한 학원을 도저히 그대로 둘 수 없음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여 즉각 행동을 개시하여 대표자들이 이 두 교수를 방문하고 학내와 원내에서 물러가 주실 것을 2차에 걸쳐서 요구하였으나 이에 불응하므로 학생들은 부득이 두 교수를 교문 밖으로 모시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때 학생들은 자기의 체면을 위하여는 제자를 서슴지 않고 형무소에 보내는 정 교수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양 교수를 밀어냄에 있어서 폭행이란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스스로가 자각하여 절대로 폭행을 한 사실이 없으며 오로지 교문 밖에까지 밀어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이 두 교수에게 폭행을 가하여 부상까지 입히기라도 한 듯이 소문이 자자하오나 이는 전혀 사실과 어긋나며 제자를 무자비하게 감옥에 처넣는 비인간적 정 교수의 비행에 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으며 어째서 학생들이 두 교수는 교분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그 근본원인에 관하여는 언급함이 없는 사회인들의 몰이해에 대하여 저희들은 슬퍼 통곡하는 바입니다. 당시 정·이 양 교수의 입원 시 담당 의사도 두 분의 입원이 자신들의 원에 의한 것이며 담당 의사로서 입원해야할 이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명언한 바 있으며 정·이 양 교수 자신도 구타와 같은 폭행을 당한 사실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입원소동은 마치 학생들이 폭행을 가하기라도 한 듯이 사회여론을 일으켜서 자기들이 사회로부터 동정을 받고자함과 동시에 학생들을 궁지에 몰아넣고자한 저열하고도 비교육자적 행위인 것입니다.
의대학생들은 지금 사회의 온갖 오해와 비난과 중상모략을 받아가면서 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싸워야만 하는 크나큰 원인은 정·이 양 교수의 비인간적 횡포가 날로 더하여가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아니 하는 것은 학생으로서 그 이상 없는 출혈이며 제자로서 스승을 배척한다는 것은 윤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기에는 너무나 높은 지성을 지닌 의대생들입니다. 우리들이 그토록 처절한 피눈물 나는 외로운 투쟁을 해야만 하는 것은 정 교수 그 자신보다도 아직 이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비인도성에 대한 처절한 항거입니다. 정 교수는 병리학 교실의 기물(약 1만5천환어치)을 파괴한 함 군에 대하여 교수회에서 무기정학이라는 공정한 처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함 군에 대한 앙갚음과 위신회복이 부족하여 교수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여러 번 진심으로 사과한 바 있는 함 군을 고소하여 쇠고랑이를 채워 감옥의 어두운 감방으로 보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감히 자기의 이름으로 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손·허 두 조교를 시켜서 하였고 그 당시 고병간 총장을 비롯하여 여러 교수 학생들이 교육자로서의 양식에 호소하여 고소취하를 간곡히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집하여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고 재생의 기회를 눈물로 호소하는 학생 함 군의 장래를 여지없이 파멸시켰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와서는 문교부에서의 지시에 의하여 전대미문의 “학생고발”이란 교육자로서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육공무원특별징계위원회에 회부될 단계에 이르자 당황한 정 교수는 학생고발은 손·허 양 조교가 한 것이므로 자기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천인공노할 파렴치한 변명을 하고 있으니 양식 있는 사회인들이여 냉정히 생각하여 보시라!
자신의 위신과 체면 앞에는 일 청년(그것도 제자인)의 장래도 아랑곳없다는 교수가 이 학원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학생전원의 원칙이 양식을 벗어난 난동이라 하겠습니까. 함 군이 자퇴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확약을 허만하 조교를 시켜서 당시 학교책임자인 안원호·박자근 양 군을 통하여 한 바 있고 이에 함 군은 감방 속에서 자퇴서를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소취하의 약속마저 지키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약속을 한 일이 없다고 부인까지 하였으니 이 어찌 교육자로서 아니, 적어도 인간으로서 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백보 천보(百步 千步)를 양보하여 학생고발은 양 조교가 했다 치더라도 병리학 교실의 주임으로서 또한 교육자로서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스승이 제자를 고발」하여 감옥살이를 시켜 그 젊은이의 앞날을 망친 교육자로서 아니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흉악무도한 행위를 묵과했다는 사실 하나로서도 그는 마땅히 책임을 지고 학원에서 물러나야 함은 상식 이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지난 6월 2일 오전에는 문리대 일부교수들을 방문하고 구명책을 위한 진정서를 배부하기에 바쁠 때 학생들이 실력으로 양 교수를 밀어낼 기세라는 소식을 의대 모 강사로부터 전화로 연락을 받고 정 교수는 「가서 당해봐야겠다」하며 실력행사를 통고한 학생들에게 사전에 모의하여 고의적으로 도전하여 제자들에 의하여 교문 밖으로 쫓겨나가는 소동을 계획적으로 유발시킴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의 오해와 비난을 받도록 하여 자신은 사회의 동정을 사려 꾀하였던 것입니다.
사회의 여러분의 양식에 다시금 호소합니다.
또한 이규택 교수는 관명(官名) 교수를 사칭하였고 정당히 입학된 대학원생을 부당한 이유로 학점을 2년간 주지 않겠다고 거부하였으며 측근 일부수험생에게 입시문제를 누설하였으니 이 어찌 교육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적래인술(跡來仁術)로써 온 인류를 온갖 질병에서 구해야 하는 무거운 사명을 지닌 의학도들입니다. 이 인술을 습득함에 해악이 되는 「인간성」을 찾을 수 없는 해독만을 전수하는 교수들이기에 우리는 학업중단이라는 학생으로서 최대의 희생을 지불하면서까지 사회의 오해와 비난을 사고 있는 가운데서도 투쟁하고 있습니다.
오직 정의는 최후에 승리한다는 한 가닥 비장한 희망을 품고 오늘도 내일도 싸우고 있습니다.
1960년 6월 8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일
출처 : 『대구매일신문』 1960. 6. 9 석1면 하단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