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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민족청년동맹’ 결성

12일, 부산상공회의소 강당에서 114명의 발기인을 포함한 지역인사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부산대 정치학과 교수 이종률에게 배운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부산에서 결성된 민민청은 대구부터 서울로 즉 아래에서부터 중앙으로 절차를 밟아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갖추었는데 주 활동무대는 부산과 대구지역이었다. 이들은 민자통 결성 이후 통민청과 함께 민자통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송남헌·정태영·서중석, 「대담 : 고초로 점철된 혁신계 50년」, 『역사비평』 1995년 봄, 88쪽 ; 유병용, 「4월혁명과 혁신세력에 관한 연구」, 『국사관논총』 제94집, 2000, 348쪽).(이하 민민청)’이 결성되었다. 중앙위원으로 통위의장에 김규원, 집행의장에 박상우·조문기 등을 선출하고, 실질적인 임원진은 중앙집행위원회 간사장에 김상찬, 부간사장에 하상연·손의현 등 대부분 부산대 출신으로 구성하였다.
이날 결성대회에서 민민청은 정치적 지향이 민족혁명론적 입장에 있으며 미국과 소련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반둥체제의 자주적 중립성을 노선으로 선언했다. 또한 청년단체의 정치도구화를 반대함으로써 이승만정권 아래 정치세력의 별동대 역할을 한 기존의 청년단체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였다.『국제신보』 1960년 6월 13일 석1면 ; 이종률, 『현순간정치문제소사전』, 1960, 147-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