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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계몽대의 강원도 일대 계몽운동 근황 보고

7월 24일자 『조선일보』 석간기사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계몽대원 안재훈이 전해온 강원도 일대 계몽대원들의 근황을 보도하였다. 서울대 문리대 계몽대의 강원도 일대 계몽운동 근황보고(第二信) • 이승만 박사에 대한 여론 - 두메산골에서는 아직도 이승만 박사에 대한 동정여론이 높고 이 박사를 유일한 지도자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 박사 같은 지도자가 없이 선거가 무슨 필요 있느냐?” 등 인위적으로 존경을 강요한 과거의 넌센스가 이렇게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에 놀라며 이들에게 진정한 지도자란 어떤 것인가를 인내심을 갖고 계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팜플렛을 나눠 주면 - 계몽대원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팜플렛을 나눠주며 제2공화국의 영광된 대원이 될 것을 같이 맹세해 본다. 그러나 선거철이 되어서인지 얼른 팜플렛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계몽대의 취지를 이야기하며 프린트를 나눠 주면 우선 묻는 것이다. “당신들은 어느 후보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 빈농의 할머니와 아리랑 - 강원도 도시 곳곳에 신파조(新派調)의 불량청소년들이 있는데 이들을 계몽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느 가난한 노파에게 아리랑 담배 한 갑을 드리며 위로했는데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죽은 남편의 무덤 앞에 놓는 것이다. 빈농(貧農)의 생활이란 어떤 것 이었나 새삼 느끼게 된다.

• 선거에 대한 관심 - 대부분의 부녀자들은 선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광부는 참의원 합동강연을 듣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 정선·속사·진북 - 정선은 화전민들이 많은 곳으로 “이곳의 교통을 완화해주고 빈곤에서 해방시켜주는 인물”을 선거에서 뽑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두메산골인 속사·진북은 평창군에 속한 곳으로 지서와 면사무소의 도움으로 계몽운동에 적지 않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 강릉과 어촌 -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고등룸펜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관여하고 있었다 특히 어촌지역을 다니면서 저축과 경제생활에 대한 계몽에 많은 성과를 얻었다.

• 결론 - 강원도민들은 빈농이 대부분으로 쌀밥을 구경 못하는 벽촌이 많았다. 한 집과 한 집 사이가 10여리씩 떨어져 있는 불편한 곳에서 주민들은 고립되다시피 살고 있었다. 언제 이곳에 평등한 혜택이 올 것인가 생각해보면 아득하다.
출처 : 『조선일보』 1960. 7. 24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