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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주시 선거강연과 방해 양상

2일 오후 전라북도 전주시 공설운동장에서 민주당 선거유세가 열렸다. 오후 1시 30분 경 강연회장인 공설운동장에는 약 2만의 청중이 모였다. 전라북도는 민주당 신·구파 갈등이 가장 격심한 지역으로 특히 중심 도시인 전주는 신·구파의 동향에 민감한 곳이었다. 이날 전주 강연회민주당 신·구파가 선거전에 동일보조를 취했다는 점과 자유당과 정부의 적극적인 집회방해가 유권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날 강연회에서 민주당 구파의 중진인 윤제술, 이춘기는 물론 유청, 윤택중, 김판술 등이 일선에서 선거유세를 하였다. 연사로 나선 조영규 의원은 고(故) 조병옥 박사의 유지를 받드는 길은 곧 선거전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끄는 길이라고 호소하였다. 개회사에서 윤제술 의원은 민주 보루의 구축을 역설하여 환영을 받았다. 이춘기는 도선거대책위원장의 자격으로 모든 유세 계획을 수립하고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였다.『 동아일보』1960. 3. 3 석1면. 3만 명의 청중이 모였다는 기록도 있다(조화영 편, 『4월혁명투쟁사』, 국제출판사, 1960, 269쪽).
이날 오후 5시 경엔 유세 장소인 공설운동장에서 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였다. 민주당 측 강연이 끝날 무렵 돌연 연단에 뛰어오른 한 고등학생이 상부명령이라는 이유로 학교선생이 유세장에 학생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 학생은 흐느껴 울며“대통령이 오셨을 때나 모 국회의원의 부인인 모 여사가 왔을 때에는 수업을 폐지하면서까지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또“일국의 부통령이 오셨는데 어째서 유세장에 못 가게 하는가”하는 것을 선생에게 물었더니 선생이 상부명령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학생은 손가락을 끊고‘민주주의’라는 혈서를 쓰기 시작했으나 장면에 의해 만류되었다. 학생의 즉흥 연설로 장내는 20여 분간 소란과 울음 속에 빠졌다.『 동아일보』1960. 3. 3 석3면 ; 『조선일보』1960. 3. 3 조3면
한편 이날 전주시 일대에서는 지능적인 집회방해사태가 연출되었다. 강연 전날인 1일 밤 9시 50분 장면이 전주역에 도착하자 시민 약 2천 명이 역전에 운집하였으나 역전 전등이 돌연 정전되어 10분 동안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불을 빨리 켜라고 아우성을 쳤고 전기가 들어오자“대한민국 만세”와“장면 박사 만세”를 외쳤다. 또한 민주당 일행이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대절하려 했으나 택시회사 조합원들이 택시의 대절을 모두 거절하여 장면 일행은 지프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였다.조화영 편, 269쪽
강연회가 열린 2일 당일엔 반장과 동회직원들, 그리고 형사들이 강연 장소인 공설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청중들을 위협하였다. 이들은 1일 밤부터 민주당 측 유세를 들으러 나가면 카메라로 찍어 누가 강연회에 갔는지 밝히겠다고 집집마다 선전하였다. 실제 강연날 수 십 명의 동반장 및 형사들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청중을 향해 사진을 찍으며“야당 집회에 나가면 사진에 찍혀 벌을 받는다”는 협박을 하였다. 이날 동원된 카메라는 100대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공무원들에게는 2일 하루 동안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지시가 미리 내려졌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전주고등학교는 2일 오후 1시부터 시험을 치른다고 했으며, 2부제 수업을 하던 전주국민학교 학생들도 전날 지시한 대로 도시락을 준비해 등교하였다. 풍남국민학교는 이날 학예회를 하였다.『 조선일보』1960. 3. 2 석3면 ;『 동아일보』1960. 3. 3 조3면
강연장에는 정복경찰관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도민증을 검사하였다. 또한 각 중·고등학교의 담당 선생들은 공설운동장 입구에 집결하여 사복경찰관들과 합류하여 학생들의 입장을 막았다. 전주 민주당 간부들은 이같은 상황에 비추어 유세장에 동원된 숫자와 거의 동일한 인원이 거리에서 집회를 방해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어렵게 강연 장소에 나왔던 청중들은 고(故) 조병옥 박사를 추도하고 눈물로 민주당의 승리를 호소하는 연설에 박수로 동감을 표시하였다.『 동아일보』1960. 3. 3 석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