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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장면 부통령후보의 전남 광주 유세와 그 방해 양상

4일 오후 1시, 전남 광주시 공설운동장에서 약 4만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민주당 장면 부통령후보의 선거 강연회가 열렸다. 연사로 정중섭, 김선태, 조영규, 박순천, 정성태, 이필호 의원 등이 나와 자유당 정부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였다.
오후 4시 20분 경 장면의 연설이 끝나자 전남대학교 학생이 연단에 올라 혈서를 제시하며 마이크로 “학생의 신분이지만 공명선거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3·1정신으로 광주학생은 살아있다”고 외쳤다. 이에 또다른 전남대학교 학생도 연단에 올라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고 마이크를 잡으려하면서 혼란이 일었다. 이후 박순천 의원의 강연이 끝났을 때도 약 10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집단으로 연단에 올라 혈서를 쓰고 연설을 하려고 하면서 두 번째 소동이 일어났다. 이때 경찰이 혈서를쓴 조선대 학교 학생 1명을 선거운동 명목으로 연행하려고 하자 20여 명의 민주당원과 30여 명의 부인들이 형사에게 달려들어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형사들은 끝내 학생을 연행하였다.『조선일보』1960. 3. 5 조7면 ;『동아일보』1960. 3. 5 석1면
이날 강연에도 어김없이 노골적인 방해가 자행되었다. 강연장 주변의 모든 차량이 운행되지 않아 시민들은 공설운동장까지 약 3킬로미터를 모두 걸어와야 했다. 게다가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길은 갑작스런 보수공사로 통행에 어려움이 컸다. 대학과 고등학교에서는 느닷없는 학기말 시험을 보았고, 시내의 택시 운전수들도 장면 박사 일행의 탑승을 거부하고 광주역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장날이었으나 시장도 텅 비었다. 부인회를 비롯한 자유당의 5개 산하단체는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앞선 전주 목포의 경우와 같이 카메라를 멘 형사들이 시내골목마다 배치되었다.
한편 이날 선거 방해를 위해 광주 시내 8개 극장에서는 극장표를 무료 배부하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3일 밤과 4일 아침 사이에 통·방장들은 방원들에게 무료 극장표를 배부하였는데 개인적으로 극장에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고 일단 통·방장집에 모여 집단으로 극장에 가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해 공작은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한 극장에서는 시민들이 표를 가지고 모여들자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하였으며, 또 다른 극장에서는 무료공개를 함으로써 표를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보다 표 없이 들어가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았다. 또한 손님이 가지고 온 표가 연기되었다고 거절하는 일도 있어 혼란이 가중되었다.『조선일보』1960. 3. 4 석3면 ;『동아일보』1960. 3. 5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