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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야,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 준비 절정

선거를 하루 앞둔 14일,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 움직임이 절정에 다다랐다. 번호표를 못 받은 유권자가 속출했고, 3인조·9인조자유당공개투표 계획은 착실히 준비되었다. 또한 무장경찰과 교통정리를 맡은 헌병, 깡패들이 곳곳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였다. 투표소에서는 부정이 쉽도록 엉성한 투표함을 만드는가 하면 선거법에 위반되는 기표소를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민주당 참관인들에 대한 공작이 계속되어 충청도의 민주당 측 참관인 40여 명은 당본부에 숨어 자유당과 경찰의 눈을 피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정선거 준비의 구체적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① 번호표 일부만 교부 우선, 투표일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번호표를 못 받은 유권자가 속출하였다. 한 민주당 시의원은 자신의 가족 7명 중 4명만이 번호표를 받았으며, 앞집은 유권자 4명 중 2명만 받왔다고 하였다. 어느 공무원도 본인에게만 번호표가 나오고 가족은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발부되지 않은 번호표는 모두 대리투표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 김해에서도 14일 오전까지 번호표가 나오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각 동·이장은 번호표를 나누어 주지 않았는데, 이유인 즉 행정당국이 자유당의 3인조·9인조 투표시 시간제 투표를 감행하기 위해 유권자 번호표까지 그 시간에 맞춰서 배부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동래군에서도 14일까지 번호표를 받은 유권자가 아무도 없었다.『조선일보』1960. 3. 14 석3면

② 3인조·9인조 훈련과 참관인 공작 자유당은 3인조·9인조 훈련을 진행하였고, 이른 아침부터 부녀자를 중심으로 3인조 조직 공작을 치열히 전개했다. 또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른 저녁 공개투표의 모든 훈련을 끝마쳤다.
민주당 측 참관인에 대한 공작 또한 계속되었다. 14일 서울 시내에서 경찰은 민주당 참관인의 사퇴를 압박하였다. 서울시 용산구, 영등포구, 종로구 등에서는 경찰이 직접 일선에 나와 민주당 참관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전 4할투입을 공공연히 말하였다. 경찰은 민주당 참관인의 사퇴를 강요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선거 당일인 15일 아침 1시간 늦게 나오든지, 아니면 점심 때 1시간 가량 자리를 비우라고 협박하였다.
실제 민주당 영등포구당의 한 의원은 민주당 참관인 전원이 경찰 및 자유당 의원들로부터 선거 시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참관인 본인 뿐 아니라 가족에게 돈을 주어 참관인 포기를 종용하기도 하였다.『조선일보』1960. 3. 14 석1면

③ 헌병·깡패 동원 살벌한 분위기 조성 선거를 하루 앞두고 14일 도심 지역에는 계엄령 하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거리에는 교통경찰 대신 헌병이 배치되었다. 헌병들은 카빈 소총을 메고 완전 무장한 채 시내 주요 요소에 배치되었다. 정부는 경찰관들이 각 투표소에 배치되어 어쩔수 없이 헌병에게 교통정리를 맡겼다고 주장했으나 군대의 등장은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경남도청 주변에는 기마경찰과 사복경찰관이 배치되어 삼엄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였다.『조선일보』1960. 3. 14 석3면
깡패 동원 또한 절정에 달았다. 충주에서는 사찰요원이라는 명목으로 깡패 약 150명을 모아 13일 밤부터 합숙시키고 14일 오전에는 각 투표소에 배치하였다. 서울 마포에서도 깡패 50여 명이 집결하여 투표일에 3개 조로 나누어 민주당 참관을 방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④ 투표함·기표소 부정 투표함 제작의 부정도 이어졌다. 충주에서는 충주시 총무과장의 지시로 이중 투표함이 만들어졌다. 실제 충주역 앞의 한 목공소는 시청 총무과장과 시청 계장의 주문으로 투표함 대형 47개와 소형 11개를 만들었는데 그 중 33개는 뜯기 쉽도록 엉성하게 하고 나머지는 이중함을 만들도록 주문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충주 시내 80개 투표구의 기표소 내부를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기표소와 기표소 간의 간격을 반이나 줄여 개표할 때 서로 볼 수 있도록 고쳐 놓기도 하였다.
대전에서는 각 투표소에 소위 ‘복도식’이라는 이중막을 쳐서 비밀장소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 충청남도 선거대책위원장은 14일 오후 시내 각 투표소를 시찰한 다음 이중막을 친 복도식 기표소는 선거법 위반임을도 선거위원회에 항의하였다. 하지만 도 선거위원회에서는 중앙선거위원회에서 지시가 있기 전에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하였다.『동아일보』1960. 3. 15 조1면, 석3면
전라남도에서도 각지의 자유당 선거대책위원장의 검열 속에 전례 없는 내통식 투표소가 설치되었다. 내통식 투표소 입구는 1매 또는 수 매의 포장으로 되어 있고 포장 내에는 3인조·5인조가 들어갈수 있었으며, 기표장소가 유권자 별로 막아져 있지않아 조장과 조원이 그 속에서 공개투표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기표소와 접수처를 별개의 방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⑤ 강제 택시 징발·완장부대·시간제 투표 광주시의 택시 약 90대가 경찰의 지시로 전부 징발되어 민주당과 언론의 선거 상황 시찰 기동력이 마비되었다. 번호표를 못 받은 유권자도 속출하였으나 번호표를 받은 유권자조차 일정한 시간에 투표하도록 시간을 배당받았다. 광주 시내 공무원들은 투표일 오전 6시에 집합, 7시부터 집단 투표를 지시받기도 하였다.
‘자유당’이라고 글씨가 쓰여진 완장도 등장하였다. 약 7만매의 자유당 완장이 이날 밤 광주시에 배부되었으며 전남 일대에서만 수 십만 매의 완장이 배부되었다. 이에 대해 자유당 측은 전남 도당 측에서 지시한 사항은 아니지만 각 지방 실정에 따라 완장을 차도 무방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였다.『조선일보』1960. 3. 14 석3면

⑥ 지방의 구체적 움직임 및 기타 부정선거 준비 (가) 전라남도
민주당원 타살 사건이 있었던 전라남도에서는 자유당과 경찰 지도 하에 부정선거 준비가 진행되었다. 14일 밤 광주에서는 3인·5인·6인의 투표조가 모의훈련을 하였고 거리는 청년단 조직과 정·사복경찰, 헌병들로 뒤덮였다. 민주당 전남 선거사무장은 이날 아침부터 시민들이 찾아와 “번호표를 못 얻었다”, “강제로 시간제로 나오란다”, “번호표를 달래다 매를 맞았다”등을 호소하며 처참한 광경을 연출했다고 밝혔다.
(나) 전라북도
전라북도에서도 투표소 설치 문제로 혼란이 가중되었다. 14일 오후 5시까지 전북 참관인 등록 상황은 905개 투표구 중 자유당 900개, 민주당 608개, 여자국민당 30개이며 통일당은 한 개도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민주당 이철승 의원은 민주당 참관인의 30%는 거의 제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더욱이 투표소 설치가 투표 전날인 14일에는 완료되어야 하는데 밤 11시까지도 대부분 시설을 완료치 않아 통행금지 시간 이후에 설치하려는 의도가 짙다고 비난하였다.
한편 전주에 주둔한 군인들의 선거를 위해 영내 투표소가 만들어졌는데 민주당 선거위원이 시찰을 요구했으나 군당국이 거부하였다. 또한 무주에서는 민주당이 내통식 투표소를 비난하며 시정을 요구했으나 자유당이 거부해 시정이 불가능하였다.
(다) 경상북도
학생시위의 시발점인 야당도시 대구를 포함한 경상북도에서도 자유당의 공개투표가 계획대로 추진되었다. 약 170만의 유권자를 가진 대구에서 민주당은 약 30%의 참관인만이 신고를 마치면서 극도의 사기 저하 상태에 빠졌다.
도시인 대구지역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민주당은 선산군, 봉화군에서단 한명의 참관인도 내지 못하였으며 경상북도 전체의 참관인 신고는 약 30%에 불과했다. 지방 민주당은 “이러한 상태 하에서 3인조 공개투표를 방지하기에는 너무나 민주당의 힘이 약하다”고 말하면서 선거를 거의 체념하였다.
민주당의 임문석 의원은 14일 오후 민주당 경북도당부에 찾아온 사람에게 “투표 당일 자유당 참관인이 민주당 참관인에게 시비를 걸어서 소란하게 한 후 민주당 참관인을 투표구내에서 끌어낼 계획이 되어 있고, 끌어낸 후에 수용할 장소까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정보와, 강압에 의한 3인조 투표는 물론 투표 전에 미리 유권자의 40%에 해당하는 표를 집어넣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또한 14일 밤 대구 시내 각 반장은 3인조 조장에게 조원의 명단을 적은 쪽지를 배부하고 조장이 조원을 인솔하여 투표할 것을 지시하였다. 하지만 일부 조장과 방장들은 이러한 자유당의 행태에 반발하고 민주당에 공개투표 지령을 폭로하였다. 이들이 받은 지령에 따르면 자유당 참관인에게 기표한 표를 보여주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것과 민주당원 폭행은 죄가 안된다는 것도 있었다. 또 투표소 단위로 자유당 표가 많이 안 나오면 전체 주민들의 사상이 의심받는다고 위협하였다.
자유당은 특히 야당 성분을 가진 유권자는 꼭 3인조의 조원이 되도록 조를 구성하였으며, 온건한 유권자에게는 번호표마저 주지 않고 기권을 간접적으로 강요하였다. 번호표를 내놓으라고 항의한 사람은 표가 이미 투표함 속에 들어가 있어 어쩔 도리가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였다.
대구시 1조 조장이 민주당에 폭로한 지령에 따르면 대구의 변두리인 침산동에서는 3인조 조장이 2명의 조원을 인솔하여 투표소 앞에 가서 번호표를 나눠주고 공개투표를 하게 되어 있는데, 만약에 3인조가 아니고 한 사람씩 분산되어 투표하러 오는 유권자에 대해서는 투표소 1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자유당원 아니면 경찰관들이 투표하지 못하게 방해 한다고 하였다.『동아일보』1960. 3. 15 조3면
투표구 설치에서도 부정이 계속되었다. 대구 시내의 투표구는 야당의 참관을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실제 참관인석과 기표소의 위치가 학교 교실의 양 끝에 있고 기표소 안에서 공개투표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편 안동 갑구 위원장은 14일 밤 시도당부에 긴급연락을 하여 참관인 신고가 실패하였고 여러 악조건으로 선거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보고하였다.『동아일보』1960. 3. 15 석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