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위대, 방송국 점령 기도
군인들이 시내 요소에 경비를 서기 시작한 것은 밤 10시 반 이후 서울시내에 배치된 후이기 때문에 이 시각은 아직 군인이 나올 시각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기록은 경비병을 군인으로 착각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무방비 상태였던 남산의 제1방송국에도 수 백 명의 양정고등학교 학생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그저 시위사실을 정확히 방송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송국 간부들은 학생들 앞에 나가서 “국영방송으로서는 어쩔수 없지 않느냐”고 설득하였다.
일부 기록에는 “5-6명의 경찰이 총을 쏘며 막으려 하였으나 학생들은 이를 무릅쓰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내부시설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다가, 뒷문으로 들어온 해병대원 수 십 명의 설득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02-103쪽).
김정렬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마침 학생들이 남산 중앙방송국을 점령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일단 축대수리관계로 남산에 주둔하고 있던 공병 2개 중대를 바로 투입하였다”고 하였다(김정렬, 238-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