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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원흉들의 집 파괴

대통령 사퇴 성명이 나온 후인 오전 11시 40분 경, 3대의 트럭을 타고 온 시위대는 “살인선거의 원흉 최인규를 죽여라!”고 부르짖으며 서울 성동구 신당동에 있는 2층 벽돌 양옥집인 최인규 집에 불을 지르고, 가구를 모조리 태워버렸다.한국일보는 최인규의 집 주소를 중구 충현동 427-6으로 적고 있다. 당시 최인규와 그 가족은 이미 몸을 피하고 없었는데, 한국일보는 이에 대해 “동래 모 처에 연금된 것으로 전한다”고 하였고(『한국일보』1960. 4. 27 조3면), 부산일보는 이들이 홍콩 또는 부산에 잠복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보도하였다 (『부산일보』1960. 4. 27). 수 개월 전 한희석이 살던 이 집은 수 천만 환을 호가하는데, 최인규가 내무장관 재직 시 수 천만 환을 다시 들여 보수함으로써 인근 주민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 가옥이다. 또한 최인규의 집 지하실에서 수 만 권의 노트와 연필이 나왔는데, 이는 최인규가 자기의 출신구인 광주의 아동들에게 선물하려던 것이었다고 한다.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39-140쪽 ; 동아일보 기자, 266쪽 ; 조화영 편, 167쪽 이웃에 있던 그의 비서 한백황의 집도 트럭과 지프차 한 대에 나누어 탄 군중들에 의해서 파괴되었다.『조선일보』1960. 4. 26 석3면 ;『한국일보』1960. 4. 27 조3면
이 외에도 26일 새벽 4시 45분, 시위대의 방화로 말미암아 불붙기 시작한 시내 종로구 연지동의 이정재의 집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전소해 버렸다. 또한 같은 날 오후 2시와 4시 사이 수 십 명의 군중들은 후암동의 임철호 국회부의장 집을 습격, 닥치는 대로 가재도구를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남산동 소재 장경근의 집도 습격하여 가옥과 가재도구를 파괴하였으나 방화는 하지 않았다.『조선일보』1960. 4. 26 석3면 ;『한국일보』1960. 4. 27 조3면 ;『동아일보』 1960. 4. 27 조3면.
한국일보는 짤막한 기사로 “원효로 한 희석씨 집을 습격 파괴하였다”고 보도하였다(『한국일보』1960 4. 27 조3면). 그러나 동아일보는 흥분한 시위대들이 청파동에 있는 한희석의 집에 몰려갔 으나 이미 보름 전에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리고이 모씨가 새로 이사를 온 것으로 밝혀져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고 보도하였다(『동아일보』1960. 4. 27 조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