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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추도식 장소 불허로 좌절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경북지부는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한국기독학생총연맹의 후원으로 6일 오후 2시 덕산동 보현사에서 전태일 씨의 추도식을 가지고자 했다. 그러나 보현사 측이 정치적인 목적과 연결된다는 이유에서 장소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좌절되었다.『동아일보』 1970.12.8. 7면 고 전태일 형 추도식 경과 보고서 생지옥을 헤매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꽃다운 생명을 바치신 고 전태일 형의 거룩한 뜻을 추모하고 인간의지의 한계적 상황을 완전히 뛰어넘은 그분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이어 받고져 저희들이 주최했던 추도식을 여러분에게 보고드립니다.
이 뜻깊은 추도식을 방해하기 위하여, 추도식장인 시내 덕산동 소재 보현사 근방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야만 했던 외부 세력에 사병화된 각 대학 교수 및 직원들(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술집마다 성황을 이루어 준 낯설은 서글픈 군상들, 보현사 경내를 서성거리는 수십 명의 정보 형사들, 외부 세력의 공갈 협박에 의해 종교인의 긍지조차도 팽개치고 직접 행동대가 되어야만 했던 승려 및 지도교수님, 이때까지의 어떠한 집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방해공작이 예상했던 대로 시시각각 닥쳐왔습니다. 저희들의 이 뜻깊은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짓고 체포 구금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넌센스를 한 귀로 흘려버리고 저희들은 추도식의 강행을 다짐하고 계속 항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험악해지는 사태는 신성한 사원 내, 그것도 하물며 부처님을 모신 법당 내에서 집단 난투극까지도 각오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불상사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까지 도달했습니다. 이에 저희들은 거룩한 그분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모인 이 추도식장을 유혈적인 사태로 빚는다는 것은 오히려 그분의 거룩한 뜻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보현사를 철수하여 당일 저녁 시내 모처에서 예정했던 추도식을 거행했습니다.
1970.12.6. 한국 대학생 불교 연합회 경북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