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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범가족협의회, ‘양심범과 그 가족들의 모임 선언’ 발표

양심범가족협의회는 ‘양심범과 그 가족들의 모임’이 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그들이 당한 박해의 양상을 고발하고 투쟁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강령과 당면목표를 선언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Ⅳ), 1987, 1410쪽.「양심범과 그 가족들의 모임 선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Ⅳ), 1987, 1410-1413쪽.
이제 우리는 온 세상을 향하여 분명히 선언한다.
인간의 양심이 범죄시 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인간의 존엄함을 밝히는 우리들의 횃불은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그 주위에 집결시켜 이 시대를 뒤덮은 온갖 어두운 슬픔과 원한과 고통을 몰아내고, 인간의 양심을 탄압하는 압제의 검은 손길을 모두 태워 없앨 때까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우리 자신이 겪고 있으며 또 앞으로 겪게 될 온갖 종류의 정치적 박해를 낱낱이 고발할 것이다.
내 아들, 딸, 내 남편에게 자유를!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모든 박해를 중지하라!
반 권력적 양심의 자유 만세!
민주주의 만세!
한국양심범의 실태 개요
서-양심범의 생산 과정 >
인간의 존엄함은 모든 사람이 자기자신의 양심, 사상, 신조, 신앙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자유롭게 지니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인간양심의 이러한 자유야말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절대화를 방지하고 개성과 이견과 비판과 국민주권의 원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초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정치권력은 그 자신의 독재를 영구화하기 위하여 권력에 반대하는 일체의 견해와 신조를 범죄시해 왔으며, 그것을 품거나 표현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탐색, 적발, 추적하여 갖가지 구실을 붙여 갖가지 형태의 탄압과 박해를 가하여 왔다. 이러한 양심범들에 대한 박해는 양심과 민권의 위축, 그리고 권력의 절대화, 부패를 조장함으로써 권력과 국민 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양심범에 대한 더 한 층의 탄압을 초래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양심범에 대한 박해의 양상〉
(1) 사찰, 감시, 미행, 도청, 연금
중앙정보부를 위시한 방대한 정보사찰 기구가 양심범의 동태를 사찰하는 데 동원되고 있으며 정치적 반대자들의 발언,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 주거지 사람의 통행을 체크하고 연행하며, 때로는 집안으로 침입하여 영장도 없이 수색한다. 또 망원렌즈를 설치해서 감시하는 경우도 있으며, 위장하여 침투하거나 또는 가족들을 회유, 협박하는 수도 있다. 사회안전법에 의하여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사람들은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 경찰서에 출두하여 모든 활동, 회합, 만난 사람, 행선지 등을 신고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2) 의사표시 및 집회의 방해
권력을 비판하거나 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집회는 권력의 폭력적 저지의 대상이 된다. 기도회조차 기동경찰의 포위 아래 놓이며, 또 그 참석자는 강제해산과 참석 저지를 받게 된다. 참석예정자를 납치하거나 연금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3) 협박, 납치, 구금 등
정치적 반대자들은 수시로 강제체포, 납치되어 수사정보기관에서 며칠씩 구금된다. 이러한 박해는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공포감 조장을 위한 것이다. 이 경우 구금되었던 사실과 그동안에 받았던 박해에 대하여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하기를 강요당한다.
(4) 고문과 투옥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의사를 표현한 사람들은 그 대부분이 영장 없이 체포되어 수사기관에서 고문과 악형을 반고 허위의 증거를 조작당하여 수사기관이 꾸민 죄목을 뒤집어쓰고 투옥된다. 무수히 반복되는 같은 질문과 그것을 부인할 때마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무차별 구타, 잠 안 재우기, 거꾸로 매달고 물 먹이기, 전기고문, 약물 주입,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 장기간 비밀 구금과 비밀 살해의 위협을 받는다. 수사기관에서 이러한 고문을 통하여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ㄱ) 공산주의자 또는 좌익사상가임을 시인하라는 것, ㄴ)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자백하라는 것, ㄷ)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거나 찬양했다고 자백하라는 것 등이다.
(5) 수감중의 박해
정당한 재판의 지연과, 검찰에서의 자백 강요와 고문, 변호사 및 가족접견의 금지 및 제한, 독서(김지하의 경우 성경까지도 금지되었다), 통신, 운동, 세면, 건강진단의 금지 및 제한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검찰에서 부인하는 경우, 또다시 수사기관에 인도되어 악형과 고문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감방 안에서의 행동이 텔레비전 장치를 통하여 감시되는 경우도 있다. 병이 있어도 양심범의 경우 진료와 치료, 그리고 병보석제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6) 재판과정에서의 박해
ㄱ) 재판이 사실상 비공개리에 진행된다. 방청권의 발행과 방청의 통제 및 방청객의 검문이 뒤따르며, 기동경찰과 정보원들이 법정 주변과 법정을 점령하는 사례가 많다. 또 언론기관은 양심범의 재판과정을 진지하게 보도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ㄴ) 피고인에게 충분한 전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피고인측이 신청하는 증거와 증인이 채택되지 아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ㄷ) 군사법정 등 기타의 특별법원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있으며 변호인들에게도 각종의 협박이 가하여진다.
ㄹ)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과 그것을 복사한 것에 불과한 검찰수사 기록이 유일한 증거로 채택되어 유죄판결의 결정적 기초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ㅁ) 모든 재판과정이 안과 밖에서 기관원들의 면밀한 감시 아래 놓여져있다.
ㅂ) 권력 및 수사기관은 판사에게 공포를 주거나 위협과 압력을 가한다. 어떤 경우 판결문까지 수사기관의 지휘를 받는다.
(7) 사회안전법의 경우
이들은 권력에 의하여 언제든지 영장없이 체포되어 무기한 강제수용될 수 있고 또 주거제한을 당하거나 보호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8) 정치적 도피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박해
정치적 도피자들의 집은 잠복 감시의 대상이 되고 수시로 강제수색되며, 그 친지와 가족들은 수시로 끌려가 심문을 받는다. 이때 고문이 가해지거나 장기간 구금, 또는 수사기관원과 함께 도피처를 강제로 찾아나서야 되는 경우가 많다.
(9) 제적, 파면, 취업 제한 등
학생들의 제적, 기자들의 언론기관으로부터의 추방, 법관 및 교수들의 파면과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가해진다. 또한 대부분의 요시찰 인사들은 국외여행이 사실상 금지된다.
우리들의 일곱가지 약속(행동강령)
1. 권력의 부당한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비굴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2.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양심범과 그 가족들의 모임’을 지킨다.
3. 개별적인 구제 운동을 하지 않으며 회원 한 사람에 대한 박해는 전체의 모임에 대한 박해로 간주한다.
4. 결정된 항의 사항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5. 모임의 비밀을 지킨다. 정보, 수사기관원의 질문과 심문에는 일체 침묵을 지킨다.
6. 전원이 한 가족의 정신으로 단결한다. 회원 상호 간에는 형제의 정으로 상부상조한다.
7. 정보, 수사기관원의 위협과 고문에 대하여 우리는 양심선언으로써 우리의 양심을 지킨다.
우리들의 당면목표
이러한 상황 아래서 우리들의 당면목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모든 양심범의 완전한 석방과 완전한 복권
2. 박정권 아래서 있었던 모든 정치재판의 무효화
3. 정치적 도피자들에 대한 수배·추적의 중지와 자유로운 귀가의 보장
4. 제적학생들의 복교, 퇴직기자들의 복직, 해임교수들과 법관들의 복직
5. 고문의 폐지와 고문책임자의 처벌 및 사찰, 감시, 미행, 도청 등 모든 박해의 중지
6. 사회안전법 등 정치범에 대한 보안처분제도의 폐지와 철저한 인신구속영장제도의 확립
7. 양심범들의 옥중에서의 정당한 처우와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
우리는 이러한 당면목표들을 추구하면서 이 땅 위에서 누구든지 정치적 반대의견으로 인하여 권력의 박해를 받는 일이 완전히 없어지고 ‘양심범 정치범이란 용어가 영원히 사라져 역사의 유물이 될 때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딸, 내 남편, 내 아버지, 내 형제자매를 위하여 그 어떤 위험도 그 어떤 유혹도 우리는 단호히 뿌리칠 것이다.
양심의 자유 만세!
1977년 4월 1일
양심범과 그 가족들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