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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근로자를 위한 기도회’ 개최 후 농성하던 학생·청년들과 경찰 간 충돌

오후 7시부터 서울제일교회에서 기장청년회 서울연합회가 주최하는 ‘청계천 근로자를 위한 기도회’가 개최된 후 철야 농성하려는 학생·청년들과 이를 강제 해산시키려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였다. 기독청년들은 이날 발표된 선언문에서 근로자들과 민주화투쟁 지식인 세력 간의 연대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하고, 특히 기구적 배경과 사회적 명망, 재정 능력이 있는 한국교회는 눌린자들의 투쟁에 동참하는 것이 기독인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주장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Ⅲ), 1987, 1161쪽.(청계피복노조의 9.9 결사투쟁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Ⅲ), 1987, 1309~1310쪽.
우리는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이 인간 행위 중 가장 값진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또한 근로자들이 인간사회의 성립 및 그 존속을 위한 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다른 어떤 계층보다도 가장 크게 이 사회에 공헌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따라서 근로자들이 사회적으로 더 우선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정의의 실천적 측면에서 본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근로자들은 사회적 제가치의 배분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급받지 못하며 따라서 교육, 의료, 문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그들에게 거의 제약되어 있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의 본질은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저한의 생활보장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창출해 낸 사회의 물질적 기초 위에서 그들을 소외시키는 문명의 꽃은 피고 향락의 무대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에 이보다 더 큰 모순은 없다. 하여 근로자가 사회적 제가치를 독점하는 계층에게 반항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성의 발로이며 인류역사는 이를 증거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청계피복지부 결사투쟁사건이 그 모순 폭발의 한 형태임을 확인케 한다. 이번 9.9결사투쟁사건은 지난 7월로부터 계속되어 온 자각된 근로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싹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민종진 씨의 폐수처리에서의 강제적 죽음을 계기로 자각된 근로자들은 단결된 투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투쟁의 과격성과 연대성에 접하자 지배자들은 공포에 전율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막기 위해 한국노동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이소선 여사(고 전태일선생의 모친)룹 구속하였고 청계피복지부의 파괴를 기도하여 노동 교실을 강탈, 점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결행된 9.9결사투쟁은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하는 세력의 하수인들에 의해 실패한 것같이 보인다. 과격한 투쟁이 좌절될 경우 그 조직은 소수화, 고립화의 위기에 봉착하며 투쟁의 상대들은 더욱 반동화해 간다는 것이 여사의 가르치는 바다. 이러한 소수화, 고립화의 위기 및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동적 탄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과 민주화투쟁 지식인세력간의 연대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믿는다. 9.9결사투쟁사건은 제1단계 투쟁의 끝임과 동시에 제2단계 투쟁의 시작인 것이다. 여기에 이 결사투쟁사건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제 당분간은 근로자들만의 고립화된 투쟁은 전개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온 모돈 청년, 학생, 지식인, 종교인들은 이제부터 근로자들과의 연대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어가야 하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와 같은 평가에 의해서 실패한 것같이 보이는 9,9결사투쟁이 실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투쟁은 지금부터인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판단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음과 감이 우리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1. 근로자들에게 : 최대한의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주들, 소외된 근로자들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지 않고 있는 정부나 주무관청,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에 불과한 폭력경찰 등 이들의 횡포와 탄압으로부터 근로자들이 노동의 정당한 댓가를 찾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자각과 단결을 통한 권리의 쟁취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2. 청년학생들에게 : 사회정의를 외치는 많은 청년, 학생세력은 지배세력으로부터는 배척을 당하나 근로자들과는 연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투쟁성이 높은 세력임을 믿는다. 이제 근로자들의 투쟁이 표면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적 상황 하에서는 청년학생들도 그들과의 연대 관계 하에서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운동논리의 요구인 것이다.
3. 한국교회 어른들에게 : 우리는 눌린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믿는다. 따라서 기구적 배경, 사회적 명망, 재정 능력 등의 면에서 현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로서의 역할을 행할 수 있는 한국교회가 눌린 자들의 일련의 투쟁, 그것도 9.9결사투쟁과 같은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사건대책위원회라도 구성하여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적 양심의 최소한의 요구라고 믿는다.
1977년 9월 22일
기장청년 전국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