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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노동자인권문제협의회,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개최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석헌·지학순·천관우·박형규 등이 대표위원으로 있는 평화시장노동자인권문제협의회가 23일 기독교회관에서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한국노동인권헌장」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억압정치와 특권경제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규정하고,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민주노조 활동, 노동자에 대한 공정한 분배 등을 요구한 노동인권헌장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326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1986쪽;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 속의 횃불』 제2권, 가톨릭출판사, 1996, 409쪽.「한국 노동인권 헌장을 선언한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 속의 횃불』 제2권, 가톨릭출판사, 1996, 455~457쪽.
오늘 우리는 77년을 마지막 보내는 마당에서 이 나라 노동자들의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 위한 한 해 동안의 피눈물 나는 투쟁을 되돌아보며, 인간으로서 보람 있는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결의를 새롭게 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그간 정부 당국은 100억불 수출,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으나 이 성장은 누구를 위한 성장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수출이었는가? 이제 그것은 명백히 판가름이 났다. 희생당한 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 국민 대중이었고 살찐 것은 외국 자본과 관료적 독점자본을 둘러싼 극소수 특권층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는 10년 전이나 다름없는 혹심한 빈곤과 질병과 천대 속에 신음하고 있다. 최소한의 생계비에 훨씬 미달하는 저임금, 다락 같이 올라가는 물가고 속에 노동자들의 피땀의 대가는 고스란히 수탈되고 생계의 불안은 나날이 깊어가며, 갈수록 심해지는 장시간 중노동과 갈수록 악화되는 유해, 위험작업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은 나날이 시들어가고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왜 노동자들은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간단하고도 명백하다. 억압정치와 특권경제 때문이다. 특권경제가 노동자들의 이익을 배반하고 억압정치가 노동자들의 의사를 탄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개개의 작업장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이 같은 정당한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특권경제 정책의 집행자들은 기업주보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수출증대와 물가안정을 내세우며 임금인상을 억제해 왔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의사표시를 하려 하면 억압정치의 도구인 정보부, 노동청, 경찰, 검찰이 개입하여 노동운동을 탄압하여 왔다.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잡혀갔으며 국회는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법률만 통과시켰다. 신문, 방송, 텔레비전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억울함은 외면한 채 정부의 반노동자적 온갖 정책을 찬양할 자유밖에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없다. 억압정치와 특권경제가 근본적으로 철폐되지 않는 한 한국 노동자의 인권은 절대로 보장될 수 없다. 개개의 작업장에서 개개의 기업주들을 상대로 한 분산된 투쟁 가지고는 우리 노동자들은 절대로 오늘과 같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예로 전태일 동지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 노동자 형제들에 대한 체포, 고문, 투옥, 해고, 구타와 삼고사(구 인선사)의 유령노조 사건, 방림방적에서의 노임체불 사건, 한국베아링에서의 부당해고의 7년 법정투쟁 등 갖가지 탄압은 우리에게 이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전국의 600만 노동자 형제자매들에게 우리의 모든 힘을 다 바쳐 철통같이 단결하여, 억압정치와 특권경제의 폐지를 위한 투쟁에 궐기할 것을 호소하면서 다음과 같이 ‘한국노동인권현장’을 발표한다.
1. 노동자는 존엄한 인격을 지닌 인간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그 어떤 이유로도 짓밟혀서 안 된다. 그 누구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학대해서는 안 되며 그 누구도 무식하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 작업장 안팎에서의 노동자에 대한 인격모독, 인권유린은 일절 중지되어야 한다.
2. 노동은 신성하며 노동자는 모든 것을 창조한다. 노동자에게는 일할 기회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자신이 일한 몫은 공정하게 차지할 권리가 있다.
3. 노동자는 사람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는 적정한 영양과 휴식과 건강을 유지하며 생계의 불안 없이 최소한의 의료, 교육, 문화생활의 혜택을 누릴 제도적 보장이 있어야 한다. 질병에 걸린 노동자는 해고의 공포에 떠는 일 없이 업주와 국가의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배울 나이의 노동자에게는 누구든지 교육을 받을 실질적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4. 따라서 현재의 노동조건은 과감히 개선되어야 한다. 생계비 이하의 저임금은 모두 일소되어야 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의 8시간 노동제는 엄격히 지켜져야 하며 노동자들이 질병과 재해의 공포 없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5. 여성 근로자들은 생리적 조건으로 보아 최소한 현행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보호조치를 받아야 하며, 동일 직종의 작업에 대해 남녀 차별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6. 노동자들의 노동 의욕을 높이고 노동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경영 참여의 길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는 역사발전에 부응하는 길이며 노동은 그 본질로 보아 단순한 노동력의 제공뿐만 아니라 창조적 활동이기도 한 것이다.
7. 정부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을 개선하고 자신의 인간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여야 한다. 긴급조치, 국가보위법,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임시특례법을 비롯하여 노동3권을 침해하고 노동운동을 가로막는 모든 악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노동자에 대한 현재의 억압적인 정치체제는 개편되어야 하며 정치권력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1977.12.23.
평화시장노동자인권문제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