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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사제단, 천주교 전주교구 통대선거 무효시위 관련 단식투쟁 돌입

전주 파티마 성당 시위와 관련하여 지난날 경찰이 신부들에게 행한 공격과 폭행에 대한 항의 표시로서, 전동성당에서 교구 사제단이 미사를 집전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제단은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의 이름으로 성명서 「7.6사태에 즈음하여」를 발표하였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343~345쪽;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52쪽.「7.6사태에 즈음하여」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153~155쪽.
우리는 7월 6일 경찰들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한 후 사경에 헤매는 박종상 신부를 한밤중 길거리에 유기한 비인도적인 처사를 민주 법치국가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중대사로 단정한다. 이것은 우연한 돌발사고가 아니라 현 한국 정치현실의 빙산의 일각이다. 새 시대의 창조적 기수로 자처한 현 위정자들은 이 민족을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성장시켰다고 자부하는 그만큼, 이 땅에 민족사상 유래 없는 불의와 독재를 창출하여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오늘의 위정자들은 국민에게 불신과 암흑을 가르쳐 주고 국민은 깊은 한숨을 배우고 체념의 도사가 되고 있다.
이 땅에는 거짓도 진실이라고 노래 부르면 진실이 된다고 믿었던 히틀러의 유령이 군중의 우상으로 섬겨지고 있으니 독재에 시중든 역사는 멸망하고야 만다는 인류의 교훈을 재현시키려 함인가? 현하 한국의 대중가요는 멸공통일이요, 그 반주는 국민총화다. 그러나 그 노래가 일인과 일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노래요, 그 반주가 소수층의 금력과 권력을 비호하기 위한 반주라면 국민은 누구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정치인은 누구를 위해 피리를 불고 있단 말인가.
삼권은 있어도 분립이 없는 헌법, 긴장과 위기의식의 소리가 높아도 평화와 자유의 메아리가 없는 정치 번영, 질서의 선전은 분주하여도 풍요와 휴식이 없는 사회가 오늘의 한국이다. 종달새가 종달새를 교육하듯이 한국인에게는 한국적인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배우고 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이 있어도 입이 막혀 있고, 보아야 할 사실이 있어도 볼 수 있는 눈을 빼앗겼으며, 들어야 할 내용이 있는 데도 들을 귀를 막고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불구자의 철학이란 말인가.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면 그것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풍파에 놀란 사공이 배를 팔아 말을 사듯이 자유에 놀란 위정자들은 자유를 팔아 노예를 사고 이 시대를 암흑의 시대로 단장하려 한단 말인가. 불신은 일치와 총화의 암이다. 이제 국민의 살길은 일치하여 불신의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위정자들에 속지 않는 것 뿐이다. 죽은 자에게는 창조가 없고 임종자에게는 내일이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미래와 이상을 가지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론하는 양심적 민주인사와 그리스도인들을 공산주의자로 선전하는 무리가 있지만 정부는 그 원흉을 엄벌하지 않고 있으니 한국의 위정자들은 스스로 종말주의자로 자처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국민의 총화 단결을 위해서 진정으로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인권을 유린당한 서민들이 인권을 회복하는 일,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하는 일, 농민들의 노고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과연 이적 행위란 말인가?
우리는 이웃 일본을 경제적인 동물이라 생각하므로 가난하더라도 살찐 돼지를 원치 않는다. 살찐 돼지의 음식은 이기심과 향락과 현실 만족이다. 한국의 경제가 천불소득을 자랑하기 위해서 가난한 자는 가난에 감사하고, 노동자는 똥을 포식하고, 농민은 더욱 착취당하고 있으니, 위정자와 소수의 재벌들은 천불을 주고 이 나라를 비인간 공화국으로 만들려 하는가. 아첨하는 언어가 대접받고 아양을 떠는 표현이 칭찬받는 사회는 꼭두각시의 사회다. 꼭두각시는 양심이 없고, 인격이 없고, 주체성이 없다. 그러나 입술의 연지가 언젠가는 벗겨지듯이 생존의 위험 속에서 발로된 비한 자의 충정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민족중흥의 과업 앞에 역사의 십자가를 자처한 인간은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망상과 오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의 역사적 과오 앞에서 면제되거나 결백한 어린 양이 아니라 공범자임을 의식하면서 간절한 충정으로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아래 사항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 사항들이 우리의 현실에서 성취될 때까지 싸우는 형제들에게는 투쟁의 용기를, 반성하는 위정자들에게는 회개의 용기를 도와 주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유혈의 희생을 각오한다.
1. 천주교 신부를 미행 감시하지 말라.
2. 내무장관은 천주교 신부를 구타, 유기한 사건에 대해 공개 사하라.
3. 교회 기관지를 압류, 발송을 지연시키는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
4. 그리스도교를 용공시, 왜곡 선전한 홍지영을 엄단하라.
5. 구속된 민주인사, 학생, 근로자, 농민회원들을 석방하라.
6.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산업선교회를 용공시하지 말라.
1978년 7월 11일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