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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전주교구 신부 폭행사건에 대한 경위서 배포 및 성명 발표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전주교구 신부 폭행사건에 대한 경위서를 작성하여 배포하고, 이와 연관된 성명서, 「순교에의 부름에 응답한다」를 발표하였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54쪽.「순교에의 부름에 응답한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169~170쪽.
지난 7월 6일 전북 전주에서는 경찰이 천주교 성직자 4명을 강제로 연행하면서 심한 구타와 욕설 등 폭행을 가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문제의 발단은 사건 전일인 7월 5일 전주교구 주교좌 성당인 중앙성당을 수십 명의 경찰이 포위하고 감시한 부당한 처사에 있었다. 7월 5일은 천주교의 첫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 축일이며 이날을 맞아 중앙성당에서는 새로 사제가 되는 이들에 대한 서품식이 거행되어 경축을 목적으로 교구내 신부들이 전원 참석하고 있었다.
경찰은 중앙성당에서의 서품식과 사제들의 참석에 내해 그릇된 억측을 하고 성당 안의 동태를 감시하려 했으며 가톨릭 센터로 자리를 옮긴 사제들을 계속 포위 감시하려 함으로써 사제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평소에도 종종 경찰은 지방 사제들을 감시, 미행, 연금하는 등 불법적인 탄압을 자행함으로써 마치 성직자들을 죄인시하여 왔다. 이날 경찰에 의한 포위 사태는 교구내 전체 사제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이 분기케 하였다. 30여 명의 사제들이 가톨릭센터 3층 옥상으로 올라가 교회 밖의 포위 경찰들을 향해 성가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구호는 신부들을 무슨 죄인처럼 여겨 감시하는 행위에 항의하는 것이었고 또 평소 크리스찬 양심에 입각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것 뿐이다.
이렇게 된 5일의 사태를 조사하겠다고 경찰은 다음날 이수현 · 문규현 · 박종상 · 문정현 신부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무모한 폭행을 가하고 욕설을 퍼붓기를 서슴지 않았대. 우리가 알기로는 경찰 기동대가 충돌할 때엔 철저히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 거처와 신분이 분명한 천주교 성직자들을 조사함에 있어 성당 사제관 창을 부수고 들어왔는가 하면 강제로 끌고 나가 무수히 구타했고 범인 호송차에 태워 싣고 가다가 구타당해 실신한 성직자를 다시 끌어내려 길에다 내버렸다. 이러한 처사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천주교 사제들이 구호를 외친 내용이 법에 저촉된다면 공명정대하게 사법 절차를 밟아야 했지 않는가? 그러한 데도 국립경찰이 함부로 인권을 짓밟는 행패를 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의 존엄성과 구령을 위해 교회에 봉직하는 성직자에게 이와 같은 불법과 폭행을 가할 수 있다면 일반 서민에게 가해질 수 있는 폭행의 상태는 더욱 혹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로 이 점을 우리 교회는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는 이미 이조시대에 여러 차례의 박해를 당해 만여 명의 순교자를 냈다. 그때 신자와 성직자들은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나 그들은 신앙을 굽히지 않고 목숨을 던졌었다. 김대건 신부도 그 위대한 순교의 대열에 앞장섰던 분이다. 그 김대건 신부의 축일인 지난 5일에 전주에서 무자비한 박해가 태동했다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천주교를 박해했던 이조 말의 대원군이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일어나는 천주교를 어쩌지 못하고 그 자신이 멸망했던 사례가 있은 이후 첫 박해에 속한다 하겠다. 이번의 전주 7.6 성직자 폭행사건은 오늘에 와서 새로이 천주교도의 순교를 실현시키려 하는 것이다.
과연 그리스도 교회는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서 있으며 우리의 신앙은 죽음을 통한 부활로써 완성된다. 오늘날 이 나라의 정치 · 경제 · 사회 모든 면을 볼 때 그리스도교 정신과는 너무도 반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한국 천주교도의 순교가 새삼 요청되고 있음을 우리는 절감한다.
근년에 천주교회의 주교와 신부들이 투옥되었었고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두 명의 평신자가 아직도 투옥되어 있고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농민회가 탄압을 받았다. 오늘 우리는 마침내 전주 폭행사태로까지 발전한 박해 사실을 중대시한다. 이에 우리는 순교에의 지향으로써 다음과 같이 결의하여 이번의 전주 성직자 폭행 사태에 임하고자 한다.
1. 위대한 순교 선열들의 후예인 오늘의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영예로운 순교정신으로써 교회가 가르치는 자유와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이 나라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폭행이나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다.
2. 7.6 전주 성직자 폭행사건을 우리는 오늘의 순교에의 부름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박해자들은 회개하여 폭력과 인권탄압을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3. 정부 당국이 천주교를 비롯하여 그리스도 교회를 불순세력 내지 용공단체로 몰고 성직자나 신자에게 폭행과 박해를 가하는 사례가 계속된다면 마침내 오늘의 위정자들이 전격으로 책임져야 할 불행한 사태가 올 것을 경고해 둔다.
1978년 7월 25일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