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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훈제, 민주주의국민연합 「8.15선언」 발표 후 구속

계훈제(桂勳梯)가 금요기도회에서 유신철폐와 양심범 석방을 요구하는 민주주의국민연합의 「8.15선언」을 낭독한 후 도피하였다. 이후 그는 자진 출두하여 8월 18일에 구속되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346~347쪽.「8.15선언」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266~268쪽.
우리는 오늘 해방 33주년, 건국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침통한 감회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8.15는 분명히 우리 민족사에 전진을 가져다 준 전환점이었다.
8.15는 연합군이 가져다준 해방이라기보다는 3.1운동과 36년간에 길친 민중의 끈질긴 피의 투쟁이 가져다준 값비싼 역사의 선물이다. 그리하여 36년의 일제 강점하에서도 이 겨레는 자주민족의 긴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자치 능력을 꾸준히 길러왔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와의 종전(終戰) 처리 과정에서 국토의 양단이 강요되자 남북 쌍방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서 통분과 인욕의 역사를 맛보아야만 했다.
이 통분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조국통일과 민족의 완전한 해방의 그 날을 다지면서 이 나라의 민주정권을 수립하고 일천한 가운데서도 민주역량을 쌓아왔고 4.19, 6.3 투쟁과 같은 민주역량을 성숙시켜 왔다. 그 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서 양극시대가 전환점에 들게 되자 이러한 계기를 민주·민족적 지반의 확대, 나아가서는 조국통일의 조건마저 성숙시킬 유일 절호의 기회임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초부터 정권강탈로 출범한 박 정권은 4.19로 시작된 60년대의 민주주의 전선을 파괴할 통치조직을 군사화했다. 그 물질적 토대를 외래 자본에서 구하기 위하여 한 · 일 협정과 월남파병을 불법으로 밀었고 60년대 말에 이르자 강대해진 박 정권의 관료, 군사, 폭력조직 고리고 그 밑받침인 외래 자본에 의한 예속경제는 서로 합세하여 박 정권의 불법적 정권 연장을 위한 요식행위로 삼선개헌을 강행했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정권 연장을 위한 또 다른 위장전술로 유신 체제를 발족시켜 그의 마각을 완전히 드러냈다.
이로써 박 정권은 이 겨레의 자치 능력을 박탈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죄악을 범했다. 박정권은 건국 30년 동안 피와 눈물로 쌓아놓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가안보를 구실 삼아 언론인으로부터는 비판의 자유를, 근로자로부터는 노동3권을, 종교인으로부터는 선교의 자유 등 모든 정치, 경제, 문화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유신헌법을 만들 당시 박 정권은 유신헌법은 통일을 위한 헌법임으로 이를 헐뜯음은 냉전 시대의 낡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낡은 사상으로 되돌아간 것은 박 정권 자체였다.
언필칭 고도성장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이것은 우리의 민족경제를 외래 자본에 수직적으로 예속시켰으며 전 국민을 고액 세금과 통화팽창 그리고 물가고로 얽어매 놓고 빈부 격차의 파행 경제로 몰아넣었다. 또 작금에 터진 공화당 국회의원 성낙현의 파렴치 사건, 아파트 부정사건, 교사자격증 부정사건 등이 박 정권의 종말을 여실히 증언하고 있다.
박 정권의 종말은 이와 같은 내적인 자기 모순에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의회에 대한 매수 공작으로 드러난 외교적 고립 그리고 미·일·중으로 이어지는 대(對) 러시아 전선의 구축이 의미하는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무감각이다. 우리는 이제 미국 국민한테 외교는 고사하고 얼굴마저 들기 어렵게 되었다. 미·일·중의 접근은 동북아의 안정을 평화적으로 다지는 조건들이다. 박 정권은 이와 같이 내외에서 몰려오는 전환기에 적응할만한 어떠한 능력도 조건도 갖고 있지 않다. 민족의 통일을 말할 자격도 없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능력도 이념도 없다. 이제 그는 국민을 호령할 자격도 없으며 국민의 혈세를 관리, 집행할 정당성도 완전히 잃었다.
더군다나 현 정권의 장(長)인 박정희씨는 국민이 직접 선거한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위장 집단 앞에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99.9%의 찬성을 얻어 대통령으로 취임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민주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1인 정권과의 싸움으로 집약되었다. 한 사람에 의한 전국민의 질식이냐, 전 국민에 의한 1인 통치의 종식이냐를 결정짓는 싸움이다. 우리는 8.15에 약속된 민족해방의 성취를 위해서 1인 독재로부터의 해방인 제2의 8.15를 향한 싸움을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박 정권이 불법으로 투옥시킨 모든 양심범을 즉각 석방하라.
2.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과도 선거 내각을 임명하여 자유로운 총선거를 실시하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하라.
3. 국민은 민족의 위기를 직시하고 자치 능력이 있는 국민으로서 민주회복의 대열에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