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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인사들 명, 「78년 10월 17일 국민선언」 발표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열린 금요기도회에서 한국인권운동협회장 함석헌, 부회장 문익환 목사, 윤보선 등 402명의 각계 인사들이 서명한 「1978년 10월 17일 국민선언」이 발표되었다. 선언문은 유신헌법이 애초에 성립하지 않고 비민족적·반민족적이라 주장하면서, 민주회복을 반드시 이룰 것을 결의하였다. 동시에, 국민들을 향해 선언에 대한 동조 및 서명을 호소하였다. 이후, 118명이 즉석 추가 서명하였다. 이로 인해 문익환 목사, 금영균 목사, 공덕귀 여사 등 일부 인사들이 수사 기관에 의해 연행되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352쪽.「1978년 10월 17일 국민선언」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가톨릭출판사, 1996, 276~279쪽.
온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빙자하여 이른바 유신헌법이 선포되었던 1972년 10월 17일, 이 비통한 날을 여섯 번째로 맞으면서 우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구한다.
유신헌법은 반민족, 반민주, 반민중적인 것으로서 현 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한 법적장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이는 폐기되어야 하며 유신헌법을 내세우고 국민을 속여 탄압 착취해온 현 정권은 퇴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인 유엔의 후원을 받아 탄생되었다. 대한민국의 국시는 자유 민주주의에 있으며 그 이념은 위대한 3.1정신과 4.19 혁명정신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그러나 박 정권은 6년 전 이를 부정하고 이른바 유신체제를 출범시킴으로 민족사를 결정적으로 후퇴시켰을 뿐 아니라 아주 암흑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위헌적인 10.17 계엄과 잇따른 긴급조치로 민주헌정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국민의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배제한 필연적인 결과로서 부정부패, 특권의 타락은 극대화되었다. 국민을 적대하는 통치 방식으로 정부와 국민 각 계층 사이에는 불신 풍조가 만연하여 국민총화는 근본적으로 깨어지고 말았고 민권과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긴장의 고조로 정권유지에만 급급하다가 마침내는 국제적인 완전 고립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이 나라는 정치, 경제, 도덕 문화생활 전역에 걸쳐 총파탄에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책임은 거의 무제한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박 정권과 이를 가능케 한 법적 근거인 신헌법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국민을 억압하고 수탈한 유신헌법의 본질을 밝히고 민주헌법을 쟁취하여 민주회복을 이루고야 말 것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1. 이 나라는 무헌법 상태다
가. 유신헌법은 원천적으로 무효다.
1972년 10월 17일의 계엄은 위헌, 위법사태였다. 박정희씨는 1971년에 자신이 행한 '국헌준수선서'를 스스로 짓밟고 아무런 헌법적, 법률적 근거 없이 국회를 해산하고 계엄 아래 국민투표를 강행하여 유신헌법을 선포하였다. 이렇게 헌법 개정 절차에서부터 헌법을 파괴한 채 제정된 유신헌법이므로 이 법은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주장한다.
유신헌법 부칙에 있는 '이 헌법의 제정과정에 대해 제소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9조)는 구차스러운 규정은 유신헌법 제정 과정이 정당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일이다. 유신헌법은 이렇게 원천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유신헌법에 근거한 그 어떤 정권 또는 사법권의 행사도 원인 무효다. 따라서 이 나라는 현재 무헌법 상태에 있다.
나. 유신헌법은 독재의 경전이다.
유신헌법은 민주 헌법의 3대 원천인 국민 주권주의, 기본권 존중주의, 권력 분립주의를 모두 부인하고 이른바 '영도적 대통령제'라는 미명 하에 박정희씨 한 사람의 절대적 영구집권을 제도화한 독재의 경전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나 그 행사는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한다고 해놓고 대표자는 대통령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사람들로만 구성되게 함으로써 국가를 대통령의 사유물로 만들었다(1조).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꼭두각시들이 토론 없이 추대하고 경쟁자도 없이 선출한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일 수 없다. 그런데 헌법 그 자체의 기능까지도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이 그의 손안에 있으니 이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부인하는 반민주성의 상징적 표현이다(53조). 더구나 이같은 절대권에 입법적, 사법적 통제를 배제함으로써 이 '긴급권'은 그대로 '독재권'으로 행사된다.
유신헌법 35~45조는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길을 막고 현 정권의 영구권을 제도화해 주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시에 위배되는 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유신헌법은 표면상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듯이 가장하고 필요할 때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 내지 박탈하였다. '법률에 의하여'라는 유보 조항을 두어 국민을 마음대로 체포·구금·압수·수색·심문·처벌할 수 있고(10조), 거주와 이전의 자유(12조), 직업 선택의 자유(13조)를 제한할 수 있고 주거의 자유(14조), 통신의 비밀(15조)을 침해할 수 있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18조)고 하였다.
헌법은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묶어놓음으로 해서(29조) 독재정권과 야합한 반민족적, 반민중적 매판 재벌들로 하여금 한국의 근로자들을 무제한 착취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이리하여 국민은 유신헌법 하에서 생존권적 기본권과 자유권을 송두리째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신헌법은 또 입법부와 사법부를 절대권력의 시녀로 만들었다. 국회를 언제든지 해산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한을 줌으로써(59조) 국회의 신성한 독립성은 상실되었다. 또 대통령의 거수기들을 재적 1/3 이상 국회에 자동적으로 앉힘으로써(76조) 국회는 국민의 대변기관의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유신헌법은 법관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주어(103조)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까지 행정부의 시녀로 만든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민주 역량은 제도적으로 봉쇄, 유린당했으며 건국이념이며 국시인 자유 민주주의는 부정되고 말았다. 심지어 개헌을 요구할 권리마저 막아버림으로써 박 정권은 국민과의 정면 대립을 선포한 것이다.
다. 유신헌법은 반민족적인 배신이다.
박 정권은 7.4 성명의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10.17 계엄을 선포하면서 '제3공화국 헌법과 체제는 동서 양극 체제 하의 냉전시대에 만들어졌고 남북의 대화를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제정되었으므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게 되었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과는 달리 군사적 긴장과 남북의 대립은 고조되었으며 '통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안보'를 구실로 은폐하려고 하고 있다.
2. 일어나 민주헌법을 쟁취하자
악랄한 정보 폭압 통치의 사슬을 끊고 일어선 국내외의 각계각층 민주인사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박 정권은 이제 완전히 수세에 몰려 있다. 긴장 완화와 평화를 갈구하는 국민의 의지는 통일을 입으로만 뇌면서 그 여건을 만들지 않는 일제 잔재 세력을 간파하기에 이르렀으며 국내의 모순을 일본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외세 의존적 집단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강화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열은 박 정권의 억압 통치를 더 이상 감수하지 않을만큼 뜨거워졌다.
이상과 같은 확신과 통찰과 뜨거움을 가지고 마음으로 쟁취할 고지는 참다운 민주 헌법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이의 쟁취를 위한 민주전선에 다같이 나서서 총 진군할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1978년 10월 17일
12개 재야단체 공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