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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민권운동 단체, 「12.12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 발표

민주주의국민연합, 인권운동협의회 등 15개의 민권운동 단체 58명이 「12.12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선거에 대한 전면 거부를 표명하였다. 이후, 서명자 30여 명이 동아일보로 찾아가 동 성명의 기사화와 유료광고 게재를 요구했으나 신문사 측은 이를 거부하고 형사를 불러 이들을 쫓아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보고서 – 1970년대 간첩·노동사건·단체편』, 2003, 294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Ⅴ) 1987, 1994쪽.「12.12 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Ⅴ) 1987, 1724~1725쪽.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 국가의 발전이나 개혁은 물론 정부의 존립과 교체까지도 선거를 통해 결정짓게 된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항상 민의를 정확하게 그리고 충분히 반영시키는 민주적 선거 절차가 건재할 때 생긴다. 그런데 권력의 정당성이 낮은 국가일수록 지배자는 선거를 민주적인 것처럼 속이려 한다. 이 속임수의 방법은 국민의 대표성을 무시한 선거 제도의 실시와 정보의 차단, 그리고 선거에 필요한 자유분위기의 파괴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1. 현 선거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가?
유신 이후 처음 실시한 지난 9대 선거에서 유효표의 38.7%만을 얻은 여당 측은 의석의 2/3를 차지하고, 42.7%를 얻은 야당 측은 1/3의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는 원칙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거역한 선거 결과요 또한 선거제도의 기본원리를 파괴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선거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바르게 집약할 수 없는 것이다.
2. 국민들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투표소에 나가게 되어 있는가?
국민들은 통화, 인플레, 외자도입 동 심각한 경제문제에 대하여 소상한 정보를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의 문제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관계의 전망이 어떠한 것이며 이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도 알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학원가의 정당한 소요와 반항은 일단기사로도 취급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외신보도를 통해서 비로소 우리의 일부 현실을 이해할 만큼 비주체적인 언론 상황 속에 살고 있다.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중요한 정보들도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 11월 2일자 외신에 보도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한국관계보고서는 우리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중 한두 가지만 예한다면, '71년 선거를 전후하여 미국기업들이 한국의 여당에게 850만 불의 정치자금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은 이것을 알았어야만 하고 언론은 이 사실을 국민에게 알렸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국민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오늘에는 다시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되었어야만 한다. 또, 한국정부의 핵무기 개발계획이 미국 행정부의 제재에 의해 좌절된 바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자주국가의 독립성의 문제요 나아가 한반도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반드시 알려져야만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국내외 정보는 이처럼 철저하게 통제받고 있다. 알 권리, 들을 권리를 철저하게 빼앗긴 국민들은 그들의 선거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다.
3. 선거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정부에게는 최대의 재량권을 용허하고, 국민에게는 최대의 공포대상이 되고있는 대통령긴급조치 하에서 금번 선거도 진행되고 있다. 박형규·문익환·윤반웅.조화순 목사 등을 재구속함으로써 비판의 소리를 봉쇄하고, 최소한의 사실을 알리려 한 동아투위의 위원들을 다수 구속하는 분위기에서 공명선거 약속은 이미 유린되어 있다. 더구나 11월 7일에 나타난 바 있다고 발표된 ‘3인조 무장간첩'은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대한민국 각처에서 출몰하고 있다는 소문만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그 정도의 안보태세도 갖추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만약 무력한 정부가 아니라면 왜 지금까지도 체포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방위력이 이렇게 무력해서야 국민이 어떻게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인가? 평소에 안보를 위해서는 국민의 자유도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병신으로 만든 이 정부는 이제 안보조차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할 만큼 무능한 정부가 되고 말았다. 긴급조치와 민주인사의 구속, 무장간첩에 대한 무방비태세 등이 선거의 분위기를 자못 공포와 위기 분위기로 유도하고 있다.
4. 인권문제와 민주발전은 약속되고 있는가?
오늘날, 세계역사의 대세는 인류의 인권신장과 민주화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금번 선거의 이슈는 고작 지역사업 정도일 뿐 인권도 민주화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정치인 김대중씨를 비롯하여 수많은 학생, 민주인사들은 교도소에 그대로 갇히어 있다. 지난 수년 동안 국내외에서 그렇게도 뜨겁게 타올랐던 인권문제에 대한 하등의 개선도, 민주화의 약속도 없는 선거가 강행되고 있다.
금번 선거는 이상과 같이 비민주적 제도와 정보의 차단, 공포 분위기, 그리고 세계사적 과업인 인권신장과 민주화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강행되고 있다. 이 선거를 통하여 국가의 발전이나 개혁은 기대할 수 없고 다만 현 정부의 계속적인 집권만이 기정사실로 되어 있을 뿐이다. 제9대 선거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10대 국회도, 민의와는 상관없이 여당권 2/3, 당권 1/3의 의석 비율로 구성될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번 선거는 민주주의 선거로서의 기본 원리를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나라의 현실을 매우 가슴 아파한다. 이것은 어떤 특정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금번의 선거가 강행되기 앞서서 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위하여 최소한 다음과 같은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일인의 장기집권만을 철저히 보장하며 민주국가 선거제도의 기본을 파괴하고 있는 현 제도를 시급히 철폐하여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제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2. 질식상태에 빠져있는 언론자유가 소생되어 국민의 판단과 투표행위에 필요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3. 공포와 위기 분위기를 제거하기 위해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모든 구속인사는 전원 석방되어야 하며, 민주화와 인권을 지향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이 단행되지 않은 채 금번 선거가 강행된다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양심적 국민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며, 우리도 동 선거를 전면 거부할 것임을 천명한다.
1978년 12월 7일
민주주의국민연합 윤보선 지학순 양순직 이상돈
한국인권운동협의회 함석헌 성내운 김승훈 김상근 백기완
가톨릭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현봉 문정현 김택암 양홍 장덕필 오태순
해직교수협의회 문동환 백낙청 김병걸 한완상
기독자교수협의회 이문영 서남동 이우정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은 조태일 박태순 이문구 김규동 이호철 신경림 구중서
언론인 천관우 문영희 임채정 이종욱 신홍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위원회 조남기 송건호 한승헌 이재정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조지송 이창복 안광수 정진동
양심범가족협의회 공덕귀 김한림 박용길 조정하
기독교청년운동 안재웅 정상복 서경석
민주청년인권협의회 조성우 양관수 박계동 이우회
서울지구인권선교협의회 이해동 홍길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