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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무역 여공노조원들, 경찰 1,000여명 의해 강제해산, 김경숙 사망

YH무역지부 여성 노동자 170여명은 신민당사에서 9일부터 근로자 생존권을 요구하는 농성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11일 새벽 2시경 1,000여명의 무술경찰과 기동경찰이 소위 ‘101호 작전’을 개시하여 신민당사 정문과 뒤쪽 비상구로 나누어 출입구를 통제하고 여공노조원들이 농성 중이었던 4층 강당 연단 쪽 비상구 문을 부수고 진입했다. 사복경찰은 열린 창문을 닫고 사방 창가 쪽을 막아섰으며 기동경찰들이 여공 노조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일부 노조원들은 깨진 사이다병으로 자살을 기도하거나 투신자살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갔다. 당사 아래에는 여공 노동자의 투신자살을 대비하여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그물망이 설치되었다. 기동경찰은 2인 1조로 여공 노조원 1명씩 다리를 들어 밖으로 끌고 가거나 곤봉질, 주먹질, 발길질 등 폭력을 행하면서 여공 노조원들을 해산시켰다. YH여성 노동자들은 무장경찰의 폭행에 반항하며 당사 앞에 세워둔 경찰 철망차·버스로 태능경찰서 등 8개 경찰서로 분산 연행되었다. YH노조 간부 김경숙은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에 왼팔 동맥이 끊기고 쓰려져 있는 채로 발견되어 인근 녹십자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숨졌다. 경찰은 정문을 부수고 침입하여 신민당원들이 의자·책상 등으로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밀치고 최루탄을 발사하며 2층으로 난입하여 회의실에 있던 김영삼 총재 등 신민당원 50여명을 구타하였으며 신분을 밝히는 취재 기자들을 폭행하고 카메라 등의 기물을 파손했다. 그 결과 신민당 당직자 및 당원 30여명, 취재기자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서울시경의 ‘101호 작전’은 23분 만에 종결되었다. 경찰은 종결 직후 시내 각처에서 청소부 30여명과 인근 건재상 종업원들을 동원하여 사건 현장의 흔적을 없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Ⅳ), 1987, 1591~1593쪽; 『동아일보』 1979.8.13. 3면; 『동아일보』 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