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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생, 「이화민주선언문」 발표 및 반독재 시위

9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 채플 도중에 이화여대학생 3,000여명이 반정부 시위를 개최하고 독재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이화민주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이화의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고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선언문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학내 기관원은 물러가고 학원 자유 보장하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노동3권 부활하라. 언론인은 각성하고 언론탄압 중지하라. 양심범을 석방하고 민주세력 탄압 말라.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이 시위로 이화여대생 원혜경(사학과 4학년)이 구속되었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카톨릭출판사, 1996, 521쪽.; 「이화민주선언문 - 8천 이화인이여 횃불이 되자」 이화여자대학교, 「이화민주선언문」 1979.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13552)허영과 거짓에 눈멀어 양장점과 다방과 레스토랑에서 방황하며 개강파티와 미팅의 노예가 된 8천 이화인이여, 어두웠던 시대에 소외된 계층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세워진 이화의 혼 앞에 모여 역사 속에서 이화를 폭로 비판하고 우리의 자세를 결의하자. 먼저 우리는 일제하 이화의 반역사적·반민족적 행위를 폭로하며 해방 후 오늘까지도 가진 것 없어 못 배우고 굶주리며 짓밟히는 소외계층의 아픔에 동참하기보다 오히려 억압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자신들을 반성한다,
일제 초 유관순 선배의 항일투쟁으로 이어진 이화가 말기 김활란 총장에 이르러 창씨개명, 학도병 출정 권유, 특히 일제병사의 위안부 정신대 강제징용의 선동적 역할을 담당한 행위와 해방 후 오늘까지도 민족의 운명을 건 4월혁명이나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는 수많은 외침에 무관심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8천 이화인이여, 이러한 역사적 심판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화의 혼이 추구하는 소외계층이 지금 노동현장, 생산현장에서 수출 100억불이라는 미명하에 생존을 위협당한 억눌린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최근 생존권을 외치다 짓밟힌 YH사건, 나이어린 여성근로자에게 똥을 끼얹은 동일방직사건, 불법적 12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해태제과사건, 그리고 가톨릭 농민회 오원춘 씨 납치사건, 이 엄청난 악의 난무가 보이지 아니 하는가! 8천이화인이여! 어둠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다가오는 불의 앞에 무엇을 망설이는가. 지금 정의를 위해 싸우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현장의 곳곳에서 민족의 내일을 위해 일어선 소리가 들리지 아니 하는가!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현 정권은 ‘선건설 후분배, 80년대의 풍요’라는 허위선전 아래 극소수 특권재벌만을 살찌우고 모든 부담을 노동자, 농민에게 전가하며 생존권 획득을 위한 민중의 저항을 폭력적 파쇼체제로 말살하고 있다. 이는 미·일 독점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매판적 독점재벌, 그 하수인인 현 정권의 결탁에 의한 국민경제의 대외종속과 내적 착취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수출증대와 눈부신 GNP의 성장은 곧 외자도입의 확대과정이며, 매판재벌은 저임금·저곡가정책을 통하여 피땀어린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수탈하고 수출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와 조세·금융지원은 결국 서민대중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근래 자본주의의 세계적 불황과 보호무역정책은 수출의존적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으며 오늘의 살인적 물가고, 기업의 도산, 실업사태 등은 그간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의 폭발인 것이다.
YH 여공 농성사건도 과도한 외자·수출의존 경제정책의 허구성과 또한 민주적 노동운동의 봉쇄에 기인한 기본모순의 일각임을 확인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순수한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을 소위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이라 왜곡, 국민을 호도하고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기본적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한 모든 노동운동과 민중의 편에 서려는 양심적 지성인과 종교단체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현 정권의 반민중성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파탄과 독재체제의 강화는 끊임없는 민중의 저항을 낳고, 민주역량의 성장은 곧 자신의 파멸임을 두려워하는 현 정권은 악랄한 탄압으로 자신의 치부를 은폐시켜 왔다. 노동자·농민의 피땀 위에 군림해온 현 정권은 노동계층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기업을 위한 임시특례법,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야만적 폭력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또한 민중의 자유, 평등 그리고 인간화의 투쟁을 말살하기 위해 위수령, 비상계엄령, 유신헌법, 긴급조치, 반공법 등 극단적인 전 국민적 탄압정책을 민족분단의 현실 속에서 총화단결, 안보라는 미명하에 자행하고 있다. 현 정권은 신성한 민족의 과제인 통일에의 진지한 노력은커녕 분단현실을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총화단결이며 무엇을 위한 안보란 말인가.
진리탐구의 도장인 학원의 자율성은 학도호국단에게 유린당하고 학원의 자유는 교내 도처에 번득이는 기관원의 눈초리에 짓밟히고 있으며 진리를 말해야 할 교수는 침묵하고 있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왜곡된 언론과 어용학자, 매판자본가만이 활개치고 있으며 수많은 양심적 지성인, 언론인, 학생들은 그들의 교단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쫒겨나 감옥에서 고통 받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반민족적·반민중적·매판적 현 정권이 낳은 구조적 모순인 바 그 궁극적 해결은 현 정권의 타도와 민중적 이해에 기반한 새로운 민족경제의 수립일 뿐이다. 이는 민족의 제단 앞에 바쳐지는 고귀한 투쟁에 의해서만 획득될 것이다. 70년 인간 최소한의 요구를 절규하여 분신한 청계피복 근로자 전태일의 죽음, 75년 4월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싸우기를 재천명한 서울농대 김상진의 죽음, 79년 정의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한 YH 여공 김경숙의 죽음을 더 이상 더럽힐 수 없다. 8천 이화인이여, 우리의 투쟁이 역사진보의 한걸음임을 확신하면서 신성한 민족의 부름 앞에 일어서자!
1. 학내 기관원은 물러가고 학원자유 보장하라.
2. 노동자·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노동3권 부활하라.
3. 언론인은 각성하고 언론탄압 중지하라.
4. 양심범을 석방하고 민주세력 탄압 말라.
5.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1979년 9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 학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