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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조선투위,「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5주년 공동 성명 발표

10월 24일 자유언론 실천선언 5주년을 맞아 동아·조선투쟁위원회가 공동으로 불광동 기독교 수양관에서 세미나를 갖고 「10.24 5주년과 언론인의 새 결단」이란 성명서를 발표하여 진정한 자유스러운 언론인의 역할이 “민중의 삶에 연관을 맺고 진정한 민중의 언론, 민족의 언론을 모색하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언론의 구현에 헌신할 결의를 다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투쟁위원회는 「새 시대의 언론을 예비하자」라는 성명서를 별도로 발표했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카톨릭출판사, 1996, 518쪽.「새 시대의 언론을 예비하자」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카톨릭출판사, 1996, 561쪽.
‘언론의 자주성’을 실천으로 표방했던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다섯 돌을 맞았다. 열화와 같은 민중의 질책과 성원 속에 전체 언론계가 하나로 뭉쳐 불붙었던 이 자유언론실천 운동은 이제 이 나라 언론이 지향하는 이정표로서 역사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74년 10월 24일부터 75년 3월 17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중이 자유언론에게 보여 준 환호와 성원 그것은 바르고 용기 있는 언론은 반드시 외롭지 않다는 산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지난날의 사실(史實)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의 실천으로써 오늘을 살아 움직여나가는 이념임을 확신하다. 폭력으로 펜과 마이크의 천직을 잃어버린 뒤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면서, 연행·감시·감금·투옥 등의 수난을 겪으면서 우리의 신념은 더욱 정제되었고 심화되었다. 자유언론은 언론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요 전체 민중의 공유물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언론 영역을 별로 넘어보지 못하던 폐쇄의식은 억압의 현장에 민중과 더불어 수난을 함께 나누어 봄으로써 무너져나갔다. 이제 ‘민중에게 자유를, 민족에게 통일을’이란 새로운 지표는 진정한 민주 민족 언론인의 좌표로써 우리에게 과거의 언론인이 아니라 미래의 언론인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78년 10.24 네 돌에 일어난 ‘10.24 민권일지 사건’은 정제, 심화된 우리의 자유언론 실천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었다. 제도언론이 묵살, 왜곡한 한 해 동안의 민중의 외침을 일지로 엮어 보도한 것은 비록 우리가 현직 언론인은 아닐지언정 항쟁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언론의 사명에 충실하려 한 탓이었다. 고난의 현장에서 민중의 부름에 응한 것이 죄가 되어 안종필 위원장 등 10명의 동지는 이 시대의 부패, 타락 언론을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일어난 ‘10.24 민권일지 사건' 이후 우리의 열 동지의 수난에 앞서 이 사건이 현 제도언론에게 던지는 물음의 뜻이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는지 주시해왔다. 미약한 목소리일지언정 이 시대의 언론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을 제시했던 10.24 민권일지 사건 이후에도 제도언론 내부에서는 전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78년 2월에 있었던 인천 동일방직 사건 이후, 노동자들이 각 언론기관에 대해 보인 공격적 항의사태, 그리고 78년 11월초 경북대 시위 학생들의 기자 구타사건 등은 이제 민중의 울부짖음을 외면, 묵살하는 언론에 대해 응고해가고 있던 민중의 분노를 단계적으로 보여 준 사례였다. ‘10.24 민권일지사건’ 뒤, 그나마 각성과 호웅의 기대는 무산되었으며 제도언론의 체질을 절망적으로 확인했을 따름이다.
79년 전반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카터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둘러싼 찬반양론이었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당하고 수많은 학생·언론인·성직자·교수·법조인이 자신들의 직위로부터 축출당하고 또는 옥고를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카터 대통령의 방한은 억압의 사슬을 풀기보다는 더욱 가열한 탄압을 불러일으킬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방한을 반대하는 인사들의 입장이었다.
과연 그의 방한 이후의 사태 진전을 우려한 인사들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YH사태, 야당 총재 직무집행가처분 결정, 그의 의원직 제명 그리고 오늘의 사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카터 방한을 기점으로 한 정치적 후유증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연말 이래 현 언론계가 보인 자세는 소극적 수동적 방조자의 위치를 털어버리고 이제는 체제의 대변자로서 적극적 억압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제도언론은 체제 그 자체로서 민중 위에 군림하고 있다. YH사태에서는 죄 없는 여성 노동자와 애꿎은 야당만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악덕 기업주와 그와 결탁된 정치적 세력의 배경 등은 아예 도외시했으며 YH사태로 표면에 부상한 노동계의 전반적 현실은 깔아뭉개는 데 급급했다. YH사태 이후 노동계와 농촌의 현실이 마치 도시산업선교회와 가톨릭농민회의 개입으로 발생한 양 온갖 모함·왜곡·욕설을 앞장서 주도·선동함으로써 오늘날 노동자, 농민의 현실에 대한 책임을 엉뚱하게 남에게 전가시키려 들었다.
이제 제도언론은 현 체제를 구성하는 불가결의 일부로서 현 체제가 제공하는 모든 특권과 이권에 참여함으로써 정론이 지니는 독자성·독립성을 잃고 모든 비판기능을 포기하고 있다. 제도언론의 기능은 바로 체제의 경직된 목소리만을 반복하는 것 뿐 사회가 갈망하는 건전한 판단기준의 제시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극단적인 탄압은 탄압하는 쪽이나 탄압받는 쪽이나 모두 극단주의자를 만든다는 사실은 세계 도처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우리는 이 사회의 수많은 양식 있는 인사들이 ‘말과 글의 역할’이 끝난 것으로 절망하는 사태를 우려한다. 타협, 설득, 승복의 미덕은 자취를 감추고 강압, 강폭만이 횡행하는 세태 속에서 아무리 제도언론을 통한 강변이 홍수처럼 쏟아져도 불신풍조만 팽배할 따름이다. 우리는 오늘을 말 그대로 언론의 부재시대(不在時代)로 이름 지을 수밖에 없다. 있다면 민중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언론이 있을 뿐이다.
민중은 자신들이 겨냥하는 원부(怨府)의 하나로서 이제 제도언론에 응징의 주먹을 들여댔다. 정론을 이탈하고 민중의 아픔을 외면, 묵살한 채 오히려 특권에 참여한 제도언론에 이처럼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만일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제도언론이 막바지의 강변·왜곡·날조행각을 일삼는 동안 용기 있고 양심적인 일부 언론 종사자들의 몸부림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 언론계는 70년대의 마지막 해인 올해의 언론사를 공백으로 채웠을 것이다. 우리는 탄압과 질곡 속에서도 제도언론 내부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저항의 맥락을 주목한다. 비록 현역과 현역이 아닌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시대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한, 우리는 식민 제국주의 시대의 언론, 반독재 항쟁시기의 언론을 관통하는 정통적 민족언론의 맥을 더불어 이어가는 것이다.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다섯 돌을 맞아 우리는 민주·민족언론의 정통임을 어느 때보다도 자임하면서 새 시대의 언론인이기를 요구하는 민중의 부름에 응하여 싸워나갈 것임을 다짐한다.
1979년 10월 24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