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삼원섬유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
12월 7일 유해우가 자신은 여전히 분회장이라고 주장하며 분회업무를 수행하려 하자, 회사는 “해고된 자가 현장에 들어왔다”는 이유를 들어, 유해우를 업무방해죄로 부평경찰서에 고발하였다. 경찰은 즉시 유해우 등 4명을 연행하였으며, 유해우는 12월 12일 구속되었다. 섬유노조 본조는 이날 제57차 중앙위원회를 열고 유해우 제명을 결의하였다.
이에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삼원섬유분회 조합원들도 12월 16일 유해우 구속이 부당하다며, 하루 빨리 석방되어 같이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진정서를 각계에 제출하였다. 이에 유해우는 1975년 1월 7일 벌금형을 받고 석방되었으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삼원섬유분회의 조합원들은 할 수 없이 새 분회장에 부분회장이었던 권병희를 선출하고 노조를 재정비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다. 하지만 회사는 무리한 사세확장으로 인한 경영난과 노조활동에 대한 위기감을 느껴 1976년 5월경에 자본철수를 단행하였다.
유해우는 자신의 노동체험과 노동운동 경험을 정리해서 『어느 돌멩이의 외침』(필명 유동우)을 펴냈으며, 1980년 이태복, 김철수, 신철영, 양승조 등과 함께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을 결성했다. 그해 8월 노동자와 학생세력이 연대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했다는 ‘학림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으며,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고문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지금은 자신이 고문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개조한 민주인권기념관 보안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