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상사 노동자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1974년 2월 26일 1,400여 명의 반도 노동자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들을 폭발시키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호소문을 통하여 전 노동자들에게 알리고, 아침 출근과 동시에 전체가 회사 앞마당에 모여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60% 지급하라, 폭행 사원 처벌하라, 강제잔업 철폐하라, 근로조건, 복지후생 시설 개선하라, 취업규칙 게시하라, 사장이 직접 해결하라” 등을 요구했다. 저녁 10시, 회사를 대표하는 5인과 노동자 대표 5명, 관계기관의 입회하에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회사측과 합의각서로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회사측은 회사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 공개된 노동자 대표들에게 불법부당한 탄압을 자행하였다. 반장이나 조장을 맡은 사람은 직위해제를 시키고, 계속 이곳저곳으로 이동을 시켜 작업을 시키기도 하는 등 악랄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였다.
회사는 섬유노조와 짜고 회사 말을 잘 듣는 사람을 노동조합 임원으로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1974년 3월 5일 노조 창립총회 때에 섬유노조 당시 쟁의부장이었던 김상문이 회사 지지파 남자노동자들을 모아 회사경비원을 지부장으로 하여 임원들을 선출하려고 공모를 하다가 발각되었고, 이에 노동자들은 농성투쟁을 전개했다.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은 밤을 꼬박 세워 투쟁을 하였고 6일 새벽 5시에 기동경찰에 의하여 해산을 당했다. 이때 부상자들이 다수 발생하였으며,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핵심원 18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3일 만에 풀려났다.
1974년 4월 15일 아침 조회시간, 섬유노조 본조 교선부장이 교육하는 과정에 1,400여 명이 참석하였는데, 노동자 대표들이 중간에 발언을 하여 즉시 노조를 결성하였다. 이때 노동자 대표인 한순임을 지부장으로 선출하고 임원들도 노동자들이 믿을 수 있는 대표들로 선출하여 명실공이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를 만들었다. 결성된 노조에 대해 회사측의 지속적인 방해공작과 중앙정보부에 의한 노동자 대표의 수차례에 걸친 구속, 섬유노조의 방해 등이 행해졌으나, 이에 조합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항해 나갔다. 특히 반도상사 노조는 섬유노조에 대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1978년 4월 13일 지부 대의원회의에서 규약채택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섬유본조에서 지부에 보낸 공문, 의무금까지 되돌려 보내면서 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1978년 5월 17일에는 본조 대의원대회 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반도·원풍·YH 3개 지부 이름으로). 단, 한순임은 1974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온 후 중정의 공작에 넘어가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깊이 관여했으며, 산업선교회를 비판하는 강연과 글쓰기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