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어떤 조사(弔辭)」로 구속
그가 구속되자 변호사 103명이 참여한 대규모 변호인단이 구성됐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석방촉구가 잇따랐다. 국내에서 한국기자협회, 문인협회, 펜클럽, 대한변호사협회, NCC인권위원회 등이 진정서 또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기독교인들이 개인자격으로 연대서명한 진정서가 재판부에 제출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5월 11일 앰네스티 일본지부 중심으로 ‘한승헌 변호사를 지원하는 회’가 구성됐고 변호사 360명, 교수, 목사 41명이 서명한 탄원서 재판부에 제출됐다. 6월 13일엔 서독대학교수 7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발송됐고, 이어 6월 28일 앰네스티 네덜란드지부 회원들이 암스테르담 한국대사관 앞에서 그의 석방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9월 13일 스위스 쌩갈랑에서 열린 국제사면위원회 총회는 재판부의 유죄판결에 항의하는 동시에 즉각 석방을 촉구하는 전문을 박대통령에게 발송했다.
⚫5.22 : 2차 공판, 한승헌 “사형폐지론을 주장하기 위해 「어떤 조사(弔辭)」를 썼고 특정 인물은 단지 소재를 제공한 계기가 되었을 뿐”이라며 기소 사실 부인.
⚫6.5 : 3차 공판, 검찰·변호인측 각기 6인의 증인 신청. 한승헌 위장장애 등 호소.
⚫6.19 : 4차 공판, 검찰측 증인 KBS 전문위원 오기완 등 4명 검찰측 증인 「어떤 조사(弔辭)」가 김규남에 대해 쓴 것이라고 주장.
⚫7.3 : 5차 공판, 육군방송 집필위원 강예묵 등 검찰측 증인 2인에 대한 신문 진행.
⚫7.10 : 6차 공판, 검찰측 증인 우길명(KBS 사회교육전문위원) 증언 청취.
⚫7.31 : 7차 공판, 홍윤숙 시인, 강원용 목사, 이우정 등 변호인측 증인 4명 증언.
⚫8.14 : 8차 공판, 검찰 증인 3명과 변호인 증인 1명 증언 청취. 변호인단, 피고인 건강 악화 이유로 ‘신체감정을 위한 구치명령’ 신청.
⚫8.21 : 9차 공판, 구치명령 신청 기각돼 재판 속개. 변호인단, 법관기피신청 냈지만 이 역시 기각되자 변호인단 퇴정. 재판부 심리종결 선언.
⚫8.28 : 10차 공판, 같은 재판장 등장에 변호인단 30명 퇴정. 한승헌 “3년 전에 쓴 수필을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것은 기린을 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궤변”이라며 최후진술 거부.
⚫9.10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1부(재판장 김형기 부장판사), 변호인단이 제출한 법관기피신청 이유 없다며 기각.
⚫9.11 : 선고공판, 반공법 제4조1항(고무찬양) 적용해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 선고.
⚫9.13 : 한승헌 항소.
⚫이후 항소심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하면서 징역·자격정지 각각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 12월 18일 출감한 한승헌이 상고했으나 1976년 11월 23일 대법원이 기각하면서 사건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