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복한 김상진 사망
김상진의 유해는 12일 저녁 8시께 사망한 지 채 12시간도 안 돼 벽제화장장에서 장례식도 없이 서둘러 화장됐다. 그 사이 유족에게는 “불행한 사태가 돌발해 학생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협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밤 10시가 넘어 벽제에 도착했는데도 화장장 문은 열려 있었고, 기관원들은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확인한 뒤 자리를 떴다. 김상진의 큰 형 김상운이 화장된 유골의 일부를 몰래 숨겨와 중앙청 옆 법륜사에 보관했고, 1976년 4월 ‘한얼’ 회원들이 유족과 함께 벽제 국제공원묘지에 봉분을 만들었다. 김상진의 사망 후 그를 추모하는 집회가 진주, 대구, 목포 등 전국에서 이어졌다.
⚫4월 12일 : 김상진 사망.
⚫4월 14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 추도식까지 막은 당국 처사 비난.
⚫4월 15일 : 전남 광주제일고교에서 추도식 연 고교생들 대거 무기정학. 민주회복 국민회의 성명. 신민당 당보 '민주전선’(1975년 4월 15일 자)에 「양심선언문」 실어 배포.
⚫4월 17일 : 광주 제일감리교회에서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 목요기도회. 기도회에서 함석헌 “그가 하려던 말이 무슨 뜻인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발언.
⚫4월 18일 : 가톨릭 학생지도신부단, 서울 명동성당에서 1,500여 명 모인 가운데 추도미사. 총장과 학장에 보내는 유서, 유품 속에서 발견.
⚫4월 19일 : 명동성당서 김상진 추모기도회. 김상진 어머니,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게 ‘소요보다 잊고 싶은 심정’이라고 편지.
⚫4월 22일 : 민주회복국민회의, 명동성당서 추도식. 당국이 주변 교통 전면 차단해 방해. 참가 예정이던 김대중 가택연금.
⚫4월 24일 : 경남 진주 경상대 학생 1,000여 명 교정에서 추모식, 안광출(22·외국어교육과 4) 등 학생 3명 연행.
⚫5월 9일 : 목포경찰서,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 등 복사한 전단 111장을 목포교육대 앞에서 학생에 배포한 국민회의 목포지부회원 조영기(21)를 즉심에 넘겨 10일 구류처분.
⚫5월 13일 : 긴급조치 9호 선포.
⚫5월 14일 : 서울대 공대생들, 김상진 장례식 준비하다 당국 개입해 실패.
⚫5월 22일 : ‘오둘둘’ 사건 발생. 서울대 도서관 앞 광장에서 긴급조치 9호 후 첫 대규모 시위. 학생들 김상진 추도식 열려다 교내 진입한 기동경찰대와 충돌. 경찰 현장에서 80여 명 연행해 그중 60명가량 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