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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전 일본수상, 한일국교정상화를 촉구 “일본의 한국 점령이 한국 발전에 공헌했다”고 주장

(도쿄 28일발 AP합동통신)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일본 수상을 지낸 요시다 시케루는 〈도쿄신문〉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서 한국과 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일본이 평화와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은 한국군과 유엔군이 공산침략에 대비하여 38선을 지키고 있는 덕이라고 말하는 한편, 한일 양국이 아직도 국교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이승만대통령의 반일정책반일을 반공과 함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대중의 지지 획득 수단으로 삼은 이승만 정권하에서는 일본한국의 우위에 서는 미국의 지역통합전략이 실현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36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전후에도 여전히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정책과 모멸적 태도를 감추지 않는 일본에 대해 한국인이 품을 수밖에 없는 증오심과 배일의식을 무시하고, 일본을 우위에 두는 미국의 지역통합전략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승만이 이러한 미국의 지역통합전략 아래에서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허동현, 「6·3학생운동의 배경」, 『6·3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조명』, 2008년도 제1차 한국현대사 관련 학술회의 자료집, 24쪽) “이승만은 맥아더의 초청으로 1948년과 1950년 두 차례 도쿄를 방문했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일본인들의 무관심과 배상을 받을 전망이 희박하다는 사실뿐이었다.” (Kim Kwan Bong, The Korea-Japan Treaty Crisis and the Instability of the Korean Political System, New York, Praeger, 1971, 44쪽(허동현, 「6·3학생운동의 배경」, 『6·3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조명』,2008년도 제1차 한국현대사 관련 학술회의 자료집에서 재인용))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요시다는 일본의 한국점령이 한국에 피해만을 주었다는 이승만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과 엄청나게 상치되는 것”이라며, “반대로 우리는 일본이 한국의 경제적 발전과 국민의 복리를 위해서 한 공헌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행히 혁명 이후에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의 번영과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협력의 적극적인 의욕을 한국 측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만약 한일관계가 조절된다면 아시아의 반공은 자동적으로 강화되고 미국도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고 주장하였다.『경향신문』 1962.4.28 석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