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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생 1,200여 명, 시위 재개 30여 명 연행, 2명 구속

15일 정오, 1,000여 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동교 배구장에서 대일굴욕외교반대애국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성토대회를 열었다. 대회에서 학생들은 전국교수들에게 드리는 메시지와 선언문, 궐기문, 결의문 등을 채택하고 시위에 들어갔다.
낮 12시 45분 고려대 학생 1,200여 명이 교문을 나와 “민족의 생명선을 피로 사수하라”, “구속학생 즉시 석방하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시위에 들어갔다.
스크럼을 짜고 애국가, 통일행진곡을 합창하며 질서정연하게 안암동 로터리까지 나온 고대생들은 1시쯤 동부교회 앞길에서 방독 마스크로 무장한 300여 명의 기동대와 무술경관의 저지를 받고 연좌, “상륙하는 게다소리 몽둥이로 때려잡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연좌데모 중 몇몇 학생들이 돌을 던지자 “경관도 같은 민족이다. 돌을 던지지 마라”고 학우들을 제지하기도 했는데 이때 경찰은 수십 발의 최루탄과 연막탄을 발사하고 학생들에게 돌진하여 이우구(사학과 3년) 등 30여 명의 남·녀학생들을 연행했다.
학생들은 매운 연기에 몰려 안암동 로터리까지 후퇴했다가 30분 가까이 서로 대치하자 오후 2시 경찰의 강력한 반격으로 교문 앞까지 물러갔다.
학생들은 14일 오후의 성토대회에서 결의한 8개 항목의 요구조건인 대정부 최후통첩에 대해 아무런 통고가 없자 성토대회를 다시 열었으며 “민족의 생명이 위태로운 현시점에서 우리 젊은 청년학도들은 총궐기하여 불의에 대한 항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후의 1인까지 일보도 후퇴할 수 없다”고 전원 박수로 결의했다.『동아일보』 1965.4.15 석7면, 『경향신문』 1965.4.15 석3면, 『고대신문』 1965.4.17 3면. 고대신문에 따르면, 15일 데모에 참여한 학생은 2,500여 명이며, 부상학생을 간호하기 위해 의료품을 소지했던 김영희(정2) 등 여학생 4명 외에 20여 명의 학생이 연행되었다. 한편 오후 4시경에 국회의사당으로 집결하여 데모를 지속하려고 했으나, 의사당 주변의 경관들이 고려대 학생들을 무조건적으로 연행함으로써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