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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비준반대 성토대회·시위 계속

연세대=28일 낮 1시 10분, 연세대 학생 2,000여 명은 “평화선은 어디 갔나, 이동원 대답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오후 2시경 아현동 굴레방다리까지 진출했으나 600여 명의 경찰 최루탄을 발사하며 저지하자 일진일퇴의 혼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 10여 명이 연행됐다.
이날 오전 정법대 학생 400여 명이 먼저 동교 107강의실에서 비준반대성토대회를 연 뒤 대강당에서 2,000여 명이 채플에 참가했었다. 연세대는 이날 정상수업을 위해 전교생이 등교했었는데, 정오 무렵부터 웅성거리기 시작, ‘되찾자 3·1정신’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3·1절 노래를 부르면서 시위에 나섰던 것이다.
외국어대=28일 낮 12시 20분, 외국어대 학생 300여 명은 한일협정비준반대성토대회를 열고, 오후 1시 10분경 “최후의 국민의 발언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교문을 출발, 침묵시위를 벌였다. 휘경동 로터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200여 명의 경찰기동대의 저지로 1시 40분경 해산했다. 경찰은 한중식(이태리어과 2) 등 80여 명『동아일보』 1965.6.28 석3면, 『경향신문』 1965.6.28 석7면. 경향신문에 따르면, 60여 명의 외국어대 학생들은 청량리서에 자진연행당하였다을 연행했다. 이날 30여 명의 외국어대 학생들은 오후 5시부터 “구속학생 석방하라”고 주장하며 동교 교정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경기공전=28일 오전 10시, 경기공업전문학교 학생 450여 명은 교정에서 한일협정비준반대성토대회를 연 뒤 3·1절 노래를 부르며 시위, 아현동 로터리까지 진출했다가 경찰과 대치, 30분 간 연좌데모를 벌이다 11시경 일단 학교로 되돌아가 희망 학생만 단식을 하기로 결의했다.
▶고려대=28일, 고대생 300여 명은 오후 3시 교내에서 ‘한일협정 무효선언 및 협정문 화형식’을 진행했다. 이 모임에서 학생들은 29일 대규모 시위를 결의한 후 29일 아침까지 철야농성을 벌였다.
▶부산대=28일, 부산대 학생 1,500여 명은 정오경 동교 교정에서 한일회담조인을 반대하는 성토대회를 가진 후 12시 30분 교문을 나서 시위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지난 22일 체결한 한일회담 정조인을 즉시 철폐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행진했으나, 대기 중이던 100여 명의 기동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학생들은 투석으로 응수하였다.
▶동대문상고=28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 동대문상고생 600여 명은 한일협정비준반대 성토대회를 연 후 교문을 나서 시위를 하려다 학교 측의 만류로 10시 40분에 해산했다. 동교는 이날부터 오는 7월 3일까지 휴교하기로 했다.『동아일보』 1965.6.28 석3면, 『경향신문』 1965.6.28 석7면, 『경향신문』 1965.6.29 석3면, 『고대신문』 1965.8.7 7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