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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문학인 82명, 한일협정비준반대 성명서 발표

9일 오전, 재경 문학인들은 “한일조약의 즉각 파기와 국회비준거부”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체 문학인들도 한일협정비준반대투쟁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박종화(예술원장) 등 82명이 연서한 이 성명서는 앞서 조인된 한일조약은 “일본 측 일방에만 유리하도록 되어 있으며, 민족적 자존과 현실적 이해, 미래의 전망에 한결같은 모욕과 재침, 그리고 실질적인 예속을 초래하도록 되어 있다”고 규탄하고, 전체 문학인은 지금까지의 관망적 태도를 버리고 “주권과 권익의 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대열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문학인들은 또한 한일협정비준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발표를 정부는 탄압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한일협정반대 데모로 구속된 애국학생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요구했다.『동아일보』 1965.7.9 석3면, 『경향신문』 1965.7.9 석3면
재경문학인 성명서 1. 우리는 한일 국교의 정상화문제가 현실적 요청임을 인정하는 까닭에 과거 60년간의 잊을 수 없는 가지가지 구원을 억제하고 정부의 지금까지의 회담 추진을 주시하며 은인자중해왔다. 그러나 오늘 국민의 여론이 한일국교정상화의 원칙을 지지한다 하여도, 그것은 어떠한 굴욕적인 조건을 무릅쓰고라도 조기타결을 강행해야 한다는 정부의 졸속한 정책을 그대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일국교정상화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호혜평등의 기초 위에 세워야 하고 그 호혜평등의 기초는 1910년의 합병조약을 포함한 한일 간의 모든 불평등 강제조약의 본원적인 부인과 무효화를 전제로 해야 하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과거의 모든 속죄를 구체적으로 제시 실천하는 것을 선결조건으로 하는 한국우위의 원칙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지난 22일 국민 절대다수의 팽배한 반대의 여론과 의사를 강경무시하고 전격적으로 조인된 한일조약의 양측 발표의 조문을 비교검토해 보건대 우리는 견딜 수 없는 민족적 의분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일본 측의 악랄한 저의와 세밀한 계산 아래 기초된 조문을 거의 무수정으로 받아들인 감이 있을 정도로 기본조약에 있어서나, 청구권문제에 있어서나, 어업협정이나, 교포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일본 측 일방에만 유리하도록 되어 있고 또 유리하게 해석되도록 어구상의 허점과 독소를 지니고 있음은 전문가 아닌 범안(凡眼)으로도 역력히 알 수 있게 되었다.

3. 이와 같이 금번의 한일조약은 우리 국민 전체의 민족적 자존과 현실적 이해와 미래의 전망에 경제, 문화, 정치적으로 한결같이 굴욕과 재침해와 실질적인 예속을 결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정기와 민족의 양심으로 이 언어도단의 한일조약의 즉각 파기를 엄숙히 요청하고 국회는 전체 국민과 더불어 이의 비준을 완전 거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4. 우리는 이러한 굴욕적 조약을, 학생을 비롯한 전체 국민의 여론을 강압봉쇄하고 강행하려는 정부가 양언(揚言)하는 바 주체의식만 확고하면 된다는 언사를 규탄한다. 정부 당국이 먼저 주체의식을 망각한 태도를 맹성하기를 촉구하며 자기들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간계를 통렬히 반박한다.
우리는 정부가 이 이상 더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의 자유를 탄압 억제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한일조약에 대한 데모로 인해 구속된 애국학생들을 즉시 석방하기를 요청한다.

5. 우리는 조국의 비운과 민족의 불행을 초래하는 이 매국, 망국적인 악조약의 완전파기를 위하여 전체 국민의 단결과 궐기를 호소하며, 역사의 대도와 민족의 정론에 입각하여 민족의 자주자존과 국가의 영속한 주권과 권익의 옹호를 위해서 투쟁하는 문화전선의 대열에 적극 참여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1965년 7월 9일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501~502쪽.
재경문학인 일동
강용준 강위석 강신재 곽종원 곽하신 김광섭 김광주 김남조 김동명 김상민 김상옥 김수영 김요섭 김용팔 김용호 김우정 김윤성 김자림 김재원 김종길 김현승 마종기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501~502쪽에는 마종기가 없고 서철규가 있는데, 경향신문과 동아일보가 일치하므로 여기서는 신문기사의 명단에 따랐다. 마해송 모윤숙 박경리 박경종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박상지 박성룡 박영준 박용구 박재삼 박종화 박해준 박홍근 박화성 방기환 선우휘 성춘복 송병수 신동엽 안수길 양명문 어효선 오상원 오영진 유경환 유주현 윤고종 윤석중 이문희 이상노 이원섭 이원수 이은상 이인수 이종기 이종환 이탄 이헌구 이흥우 장만영 장수철 전봉건 전영경 전숙희 정명환 정비석 정한숙 조병화 조지훈 주요섭 최인욱 최일남 최정희 하근찬 한말숙 현재훈 홍윤숙 황순원(가나다순 이상 82명)『동아일보』 1965.7.9 석3면, 『경향신문』 1965.7.9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