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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육해공군 군종감, 기독교도들에게 호소문 발표

12일, 전직 육·해·공군 군종감들은 동아일보에 ‘비준찬반의 민족적 혼선에서 기독교는 본연의 자세를 지키자’는 제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동아일보』 1965.8.12 석2면 〈호소문〉 비준반대의 민족적 혼선에서 기독교는 본연의 자세를 지키자 작금 국내 각계에서 한일협정의 국회비준을 위요하고 찬반양론으로 격론하고 있는 이때에 일부 기독교의 교우들이 비준반대구국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전국 교우들에게 동조를 호소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국민의 의사표시 이상의 과격한 준정치활동은 국가발전과 교회 건덕(建德)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방공전선에 종군하였던 우리 전직 육해공군 군종감 일동은 좌시할 수 없어 우리의 의사를 전국민과 교우들과 동지들 앞에 피력하는 바입니다.

1. 한일국교정상화는 그 대원칙에서 전국민이 원하는 바이고, 우방국민들의 기대하는 바입니다.
한일협정의 내용에 불만과 석연치 못한 점도 있고 지난날의 침략과 학정의 역사는 우리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폭압무도했던 순교의 피는 아직도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비준반대는 감정을 초월하여 국제적 조건의 테두리 안에서 민족적 이해에 직결되는 냉철한 입장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양국 간의 정식조인이 끝났고 국회비준의 차례만 남은 금일 과도한 정치활동은 국가발전과 교회도덕상 심히 우려되는 바가 있습니다.
더욱 북괴의 간첩침략이 극심하여가고 있음을 직시하며 월남전선의 혼전을 관망할 때 자유진영의 대동단결과 반공전선의 유대강화가 금일과 같이 격렬히 요청되는 때는 또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교회는 경제적 발전을 심히 갈망하는 국민 앞에서 소이를 버리고 대동단결하여 군관민 일체의 미덕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며 우방국가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비록 과거의 적국일지라도 손을 잡는 긍지를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2. 기독교는 자체의 주체적 자세를 확립하여 금후 일본의 경제적 정신적 문화적 침략을 막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국가적 문제는 일본인의 재침략의 우려입니다. 우리 국가는 경계심과 동시에 능히 재침을 막을만한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외침의 우려에 앞서 국가와 국민의 부정부패를 책하는 선지자가 되어야 하며 퇴폐한 국민도덕의 수술자가 되기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우들의 애국정열은 전국민을 복음화하는 데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수백의 사교가 전국에 우후죽순격으로 일어나고 있고 일본의 창가학회니 대리교니 하는 우상종교가 전염병처럼 우리 민족을 침식하고 있는데 이런 종교적 침략을 대안의 화재처럼 관망하지 말고 정부와 협력하여 적극 박멸하여야 합니다.

3. 기독교인은 정치참여를 하기 전에 바른 사회참여를 하여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함은 당연한 일이나 현재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니 비준을 반대한다’는 선(先)의견은 올바른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라고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는 불신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 첫째입니다. 군목, 형목, 교목, 원목 등 사업을 위시해서 전 교회가 불신사회를 복음으로 점령하는 일과 사랑과 봉사의 활동을 하는 것이 교회활동의 전부입니다. 교회는 정치문제에 기울이는 이상의 열성을 전도와 봉사에 기울여 전 국민의 촉망의 적(的)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자신들의 결성한 엄숙한 교회연합기관까지 제쳐놓고 개인들이 합동하여 전 교우의 이름으로 정치참여를 하고 있음은 기독교 발전에 저해가 되며 교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우려하는 바입니다.
전국에서 복음의 사도로서 생을 바치고 있는 육해공군 출신의 예비역 및 현역 군목제위는 동지적 결속으로써 이 시점에서도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본연의 사명에만 충실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1965년 8월 일
전직 육해공군 군종감
김형도 박치순 양석봉 인광식 유영근 박장원 전덕성 최성곤 박한승 조인숙『동아일보』 1965.8.12 석2면. 그런데 여기에 연서되었던 인광식(예비역 해군 대령) 목사와 박장원(예비역 해군 대령) 목사는 14일 오전 해명서를 발표, 이 성명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동아일보』 1965.8.14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