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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에서(Chuck Esser)
사업개요
- 척 에서(Chuck Esser) 구술채록
- 미국 퀘이커 평화운동가 척 에서(Chuck Esser)의 방한을 계기로,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지원 동기와 초기 활동을 비롯하여 1987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Korea Support Network’ 의 결성과 활동 및 2003년 ‘North American Committee for Peace in Korea’ 결성과 운영에 이르는 시기별 활동 전반을 구술 채록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척 에서(Chuck Esser)
- 면담자
- 진영종
- 구술일자
- 2018.10.24.
- 구술장소
- 한국퀘이커 서울모임 집
- 구술시간
- 111분
구술컬렉션 > 해외민주인사 > 미주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미국 종교친우봉사회(AFSC) 4대 평화운동가 중 1인
한국민주화운동 지원
한국 평화를 위한 북미 위원회(the North American Committee for Peace in Korea) 회원
한국지원 네트워크(Korea Support Network)활동, 한국방문(1987) 및 미의회 및 국무부에 한국문제 관련 로비(1987-90년대 중반)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 척 에서(Chuck Esser)는 필라델피아에서 성장과정을 보내면서 주거개방 프로젝트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비폭력평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14세였다. 퀘이커 대학인 얼햄대학에 들어간 구술자는 일본 와세다대학과의 교류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일본의 베헤란(Beheran)이라는 평화기관과 가까워지게 되었고 한국의 상황과 김지하의 수감에 대해 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김지하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구술자는 본인의 고국인 미국 정부가 전 세계 다른 국가들과 아시아에게 해온 일들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꼈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퀘이커가 되었고, 한국과의 관련은 더 깊어졌다. 미국퀘이커의 아시아에서의 평화와 정의를 위한 위원회 활동 등 직접적인 활동을 전개했고, 이 무렵 이행우와도 알게 되었다. 1979년 구술자는 한국지원의 임무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여 연금상태에 놓여있던 함석헌 선생과 김대중 선생의 부인을 만났다.
1980년대에는 AFSC의 아시아위원회와 협력하여 동아시아 프로그램과 북한 (농업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구술자는 이행우와 함께 한국과 아시아의 평화와 정의를위한 필라델피아위원회를 시작으로 약 10개의 교회와 정치단체를 포함하는 한국 지원 네트워크(Korean Support Network)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했다. 활동은 미의회에서 한국민주화운동을 지원할만한 의원들을 찾아가 로비를 하는 것이었고,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피코 노동자들에 대한 캠페인이었다. 구술자는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미국인들과 미국단체들을 열거했으며 그들은 여전히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구술자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한국전쟁 종전의 일부, 평화운동으로 본다고 말한다.
구술자는 재미동포들과 함께 계속 미국의 의회 로비작업을 진행했다. 미국의 의회는 인종차별적이었기 때문에 백인 남자가 로비를 하는 것이 유리했다. 구술자는 이행우 등과 함께 순수 미국인으로 구성된 한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 위원회 [National Committee for Peace in Korea]라는 명칭의 기관을 만들고 활동했다. 이후에도 구술자는 사드반대운동, 제주도 강정마을 문제 등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으며, 비폭력평화운동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한국민주화운동을 돕기 위한 미국인들의 한국지원네트워크 조직과 미의회 로비, 활동한 사람들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