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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5.18민주화운동

한국현대사 속에서 5.18민주화운동은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가?
10.26 이후 권력의 공백기에 12.12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하면서 민주화 일정을 가로막고 안개정국을 펼쳐 급기야는 5.17 계엄확대로 권력을 장악하려던 신군부에 맞선 광주민중들의 항거투쟁은 신군부의 재집권에 분연히 맞서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에 달하는 부상자가 발생하는 유혈항쟁으로 전개되었다.
‘불순분자들의 책동’ ‘폭도들의 무장난동’등의 표현을 앞세워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으로공수부대를 투입하고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되었다. 전두환 일당의 살인만행을 저지하고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위적으로 무장하며 저항했던 시민군들은 불순분자요 폭도로 매도 되었다.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과 노태우가 법정에 서게 되고 ’폭도들의 난동‘은 '민주화운동’, ‘국가유공자’까지 불과 10여 년만에 그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데에는 민주화운동세력들의 끊임없는 희생과 투쟁이 수반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자발적인 민중운동의 소산이다. 조선말기의 갑오농민혁명, 일제 강점기의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해방투쟁,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 등의 정신을 이어받은 밑으로부터 개혁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항쟁이었던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깨어있는 민중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적인 통일, 그리고 평등 세상을 향한 사회진보 운동의 일대 전환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목적 살인죄로 기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고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학살을 허용, 또는 방관한 책임에 대해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광주학살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는 끝내 비밀을 밝히지 않고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5.18민주화운동의 의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그 성과를 올바르게 계승하기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