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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장면부통령저격사건 재수사 결정

13일, 검찰은 1956년에 발생한 장면부통령저격사건1956년 9월 28일 오후 2시 30분경, 명동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당시 장면은 자유당 이기붕을 이기고 부통령으로 취임한 상황이었다. 이날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열고 조병옥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장면·곽상훈·박순천·백남훈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였다. 그런데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와 시공관 동쪽 문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범인 김상붕은 명중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며 도망치다 체포되었는데 총알은 장면 부통령의 왼손을 스쳤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므로 살인미수에 그쳤다(김삼웅, 『해방 후 정치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4, 95-96쪽).을 정식으로 재수사하기로 결정하고 이덕신·최훈·김상붕 등 3명에 대한 당시 사건수사경위를 재조사할 것을 지시하였다. 사건담당 검사는 서울고등검찰청 이홍규 검사이고, 특히 이덕신의 배후장면부통령저격사건의 범인 김상붕은 체포 당시 자칭 민주당원이라고 주장하였으므로 경찰은 이 사건을 민주당 내분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가 당시 민주당 서울시 성동구당 간부 최훈으로 밝혀지고, 최훈의 배후는 성동경찰서 사찰계 주임 이덕신 경위인 것으로 드러나자 경찰은 사건의 확대를 막으려고 했다. 결국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덕신의 배후에 경찰 고위간부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치안국장 김종원의 이름부터 이익흥 내무부장관의 이름까지 거론되었다. 이후 서울시경 사찰과장·치안국 특수정보과장·치안국 중앙사찰분실장 등에게서 자금이 나왔다는 것도 밝혀졌으나 정확한 배후는 확인되지 못했던 것이다(「장 부통령 저격사건」, 『해방 20년사』, 1965, 813-815쪽).에 대한 부분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960. 5. 13 석3면 ; 『대구매일신문』 1960. 5. 14 조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