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자유당, 정·부통령선거전 첫 대결로 출마환영 강연대회 개최

7일 오후, 서울에서 자유당민주당의 강연회 대결이 시작되었다. 같은 시각에 인근 지역에서 개최된 이날 강연회에는 도합 20만 명 가까운 서울 시민이 참석하여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날 각각의 강연장에 온 시민의 숫자는 자유당민주당 인기의 바로 미터가 되기 때문에 큰 관심이 쏠렸다.
7일 오후 2시 5분, 예상보다 25분 앞서 자유당서울운동장(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이승만 대통령후보와 이기붕 부통령후보 출마 환영대회를 개최하였다.서울신문』1960. 2. 7 석3면.
AP는 7만 명이 참석하였다고 보도하였으며(서울 2월 7일발 AP(『 동아일보』 1960. 2. 9 조1면)), 서울신문은 14만 명이 참석하였다고 하였다.

첫 연사는 보성 재선거에서 당선된 황성수 의원이었다. 황성수 의원은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미국에서 이승만의 대일 외교 정책을 언급한 것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였다. 그리고 군 감축도 절대 불가하다고 하였다. 연사로 나온 손도심은 민주당을 비판하였고, 구철회 의원도 민주당의 분열을 지적하였다.4월혁명청사편찬회,『4월혁명청사』, 성공사, 1960, 469쪽 최규남과 이정석 의원도자유당을 지지하는 선거 강연을 하였다.
민주당과의 대결이라는 면에서 관심을 끈 이번 강연회에 자유당은 대규모로 시민들을 동원하였다. 트럭과 버스를 동원해 선거강연장인 서울운동장까지 실어 나르기도 하였다. 강연회가 시작되기 전인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자 각 동회별로 버스와 트럭에 실려온 시민들이 강연장에 속속 도착하였다. 아침부터 영업용 버스나 트럭은 물론 관용 트럭에 실린 시내 각처의 시민들이 서울운동장으로 실려 왔다. 이날 동원된 차의 숫자는 어림잡아 서울 시내 256개 동에 각 2대씩 약 500대 정도, 모인 시민들은 약 6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어떤 동회에서는 점심으로 빵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돌아갈 때 쓰라고 전차표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비누를 추첨으로 주는 풍경도 연출되었다. 서울 성북구의 한 동네에서는 안 나오는 사람에게 이유서를 쓰라고 협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군중은 1/3로 줄어들었다.『조선일보』1960. 2. 8 조3면 ;『동아일보』1960. 2. 8 조1면, 석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