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개요

일요일인 28일 오후 대구 시내 곳곳에서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학교·경북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의 학생 1,200여 명이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대구에는 민주당 부통령후보 장면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학생들의 민주당 강연회 참석을 막기 위해 대구시내 대부분의 학교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지시했는데 명목은 각양각색이었다. 대구여고는 졸업생 송별회와 무용발표회, 경북고는 영화관람, 경상중학교는 졸업식 연습, 대구상업고등학교는 졸업생 송별회와 원서제출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제일여자중학교는 임시수업을, 대구고는 토끼사냥, 경북사대부고는 임시시험, 대구공업고등학교는 학교 자체행사, 각 국민학교는 보충수업 등의 이유로 학생을 등교하게 했다. 학생 뿐 아니라 이날 대구시내 공장과 회사도 직원들을 출근시켰다.안동일·홍기범 공저,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68-69쪽
그러나 학생들은 오후 1시 경부터“학원의 자유를 달라”고 외치면서 대구 시내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경찰과 충돌해 약 200명이 연행되었다. 대구 경찰은 오후 2시 경 부터 비상경계를 실시하여 도청 경찰국 주위 일대에 새끼줄을 치고 교통을 차단했다. 또한 소집된 정복 무장경찰관과 사복경찰관들을 시내 각 요소에 배치하여 시위 학생들을 발견하는 대로 연행했다. 오후 1시 30분 경부터 연행되기 시작한 학생들은 경찰국에 120여 명, 대구경찰서에 약 50명, 남대구경찰서에 80명(여학생 30명 포함)이었다. 경찰은 상부의 지시에 의하여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사이에 주모자로 알려진 학생 수명만을 제외하고 모두 학교 당국에 인계, 석방했다. 경북도지사는 학생시위사건 수습은 될 수 있는대로 학원 당국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후 밤 늦은 시각에 도지사 관사 앞에서 연행된 경북사대부고 학생 4명과 시위 주도자로 알려진 경북고 이대우 외 수 명의 학생도 밤 10시 경 훈계·방면하였다.『 대구일보』1960. 2. 29 ; 『동아일보』1960. 2. 29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