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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상업고등학교, 40여 명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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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9시 경, 대구상업고등학교 1·2학년 학생대표들은 전날 시위로 경찰에 연행된 경북고대구고 학생들의 석방을 호소하기 위한 시위를 협의하였다. 첫째 수업 시간이 끝나면 전원 운동장으로 나와 삼덕로터리 부근에서 집합하기로 결의했으나 교직원과 경찰의 제지로 10시 30분 경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은 40여 명에 불과했다.동아일보는 학교를 나온 학생이 40명(『동아일보』1960. 3. 1 조3면), 대구매일은 20명, 잡지 새벽은 20명 정도로 밝히고 있다(남욱, 「2·28대구학생데모사건의 진상」,『 새벽』1960월 4월호, 98쪽). 이 과정에서 경찰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이 담을 넘다가 학교 벽돌담이 무너지기도 하였다. 시위는 교직원과 경찰의 제지로 10분만에 해산되었다.
한편 남대구경찰서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전원을 비상소집해 대구상고로 몰려갔다. 시위 진압 후 각기 교실에 수용된 학생들은“경관은 물러가라”는 등의 소리를 질렀다. 또한 학생대표 7명은 경찰에서 경북고와 대구고 학생들을 석방치 않는 한 시위를 하겠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은 경찰과 함께 남대구경찰서까지 동행해 형사실을 둘러본 후 구속된 학생이 없음을 확인했다. 양재휘 대구상고 교장은“학부형은 공부만 열심히 하도록 학생들에게 타일러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대구일보』1960. 2. 29 ; 『동아일보』1960. 3. 1 조3면
분류
시위 상황 / 대구 196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