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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고등학생 1천여 명, 공명선거 외치며 시위 전개

중동고등학교, 대동고등학교, 균명고등학교, 경문고등학교 등 10여 개의 야간 고등학교 학생이 주동한 시위가 14일 밤 9시를 전후하여 인사동 입구·화신백화점 앞·광화문 네거리·서대문 로터리 등 서울시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른 저녁부터 경찰과 교원들은 길거리에서 학생들의 귀가를 종용했으나 저녁 8시를 전후하여 삽시간에 모여든 학생들은 100명씩, 50명씩 떼를 지어 삐라를 뿌리고 구호를 외쳤다. 횃불을 들고 스크럼을 짜서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날 밤 시위는 횡적 연락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류시경 국장 진두지휘 아래 미리 배치되어 있던 경찰 300여 명은 방망이와 백차로 시위대를 강제해산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부상을 입었다.
밤 9시, 종로 화신백화점 앞 거리에 대동상업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이 책가방을 옆에 끼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를 쓴 삐라를 뿌리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미리 배치된 경찰은 학생들을 즉시 해산시켰다. 화신백화점 앞 시위에 참가해 경찰봉으로 머리를 맞아 파열상을 입은 한 야간 고등학교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학생들은 등교해서 즉흥적으로 시위를 하기로 했고, 약 300매의 삐라를 써서 종로 입구로 나왔으나 경찰들이 너무 많아 광화문 네거리까지 뛰어나와 구호를 외친 학생은 4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시위를 했다고 밝혔다.
밤 9시 20분 경엔 세종로 네거리에서 균명고 학생 약 200명이 “공명선거”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역시 경찰에 의해 5분 만에 강제 해산되었다. 경찰은 약 30명의 학생을 연행하였다.
이날 약 2시간 동안 경찰에 연행된 학생은 300명이며 시위에 참가한 학생은총 1천 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밤10시 경 서울시경은 서울지검에 사건 개요와 다음과 같은 학교별 검거인원을 보고하였다.
•균명= 50명 •경문=28명 •중동=37명 •대동=52명 •배재=1명 •수송=1명 •선린=3명 •경기=2명 •보인=2명 •조양=1명 •중앙=1명 •대신=1명 •경동=1명 •합계 180명, 현재 주모자 11명 취조 중 안동일·홍기범 공저,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92-94쪽 ; 『동아일보』1960. 3. 15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