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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재완 의원, 여수시당원 살해사건 관련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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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여수시당원 김용호 살해사건에 대해 김용호의 장인인 민주당 정재완 의원은 4일 오후 민주당 중앙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정재완 의원은 김용호 살해사건은 경찰의 관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김용호를 살해한 깡패 일행 3명이 소지하고 있던 ‘여행 중의 주의사항’, ‘여행 중의 우리의 일과표’및 그들의 이름이 적힌 ‘지휘망·조직망’등을 공개했다. 다음은 정 의원이 발표한 사건 정황이다. •깡패행동체계 : 경찰은 여수 깡패두목을 움직여 그를 지휘자로 삼고 그 직속부하인 정인석을 광주에 보내어 13명의 깡패를 초청하여 여수시내 관문동 벌교식당에 사건발생일(3월 9일 저녁 9시 반) 일주일 전부터 합숙시켰다.
•사건 현장에는 사복경찰관 2명이 사건의 경위를 시종 목격하고 있었으나 범인을 체포하지 않고 방관하였는데 사복경찰관 한 명의 이름은 정형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명미상이다.
•그런데 성명미상의 사복경찰관은 김씨가 절명한 뒤 시체를 검색하고 패스포트를 절취하여 그 속에 든 가족사진을 꺼내어 가지고 다니면서 10일 오전 중에 김씨의 집에 나타나 그 사진과 상가의 가족들을 서로 대조하다가 식모와 13-14세 되는 아이들에게 들켜 도망갔다.
•사건발생 전 3월 3일 경 피살자의 형 김용섭에게 여수 경찰서 모 형사주임 김제혁이 “아우더러 조심하도록 타일러라. 그대로 가면 좋지 못할 것이다”라고 협박하였는데 이러한 협박은 동 사건과 관련 있는 전조이다.
•전기 13명의 깡패들은 김씨를 살해하고 그날 밤으로 그들의 숙소인 벌교식당을 떠나 이튿날 아침 8시에 광주로 돌아갔다. 이들이 돌아간 후에는 다른 깡패 수 십 명이 10일부터 15일 정·부통령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몽둥이를 들고 매일 밤 민주당 여수시당부 주위를 서성대며 당원들에게 “가정에 급보가 있으니 가보라”는 등 갖은 유혹을 써서 당사 밖으로 불러내려 하였다. 그러한 깡패들의 소행은 모두 경찰의 간여 내지는 묵인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사건 후의 경찰수사도 형식적인 것이 될 것이다.『조선일보』1960. 4. 5 조3면 ;『동아일보』1960. 4. 5 석3면
분류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1960-4-4